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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랑이 / 이경림

주선화 2015. 9. 3. 10:03

푸른 호랑이 / 이경림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저 높은 굴뚝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푸른 연기와

사라지는 뼈

사라지는 살들 사이에는

 

낡은 의자에 앉아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그 앞에서 설렁탕을 먹는 시든 달리아 같은 아내 사이에는

 

그것들의 배경과 더러운 유리창과

산발을 하고 흔들리는 수양버들 사이에는

날개를 빳빳이 펴고 태양 속으로 질주하는 새

반원을 그리며 느리게 불려가는 바람 사이에는 그래!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