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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주선화

미로 -주선화 비가 오는데우산도 없는데지나가는 사람들 힐끔거리는데신발이 젖고 있는데배도 고픈데아이들 밥 챙겨줘야 하는데집에 불도 때야 하는데 왜 이렇게 춥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엄마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나는 배가 고프고엄마는 언제 오나잠이 오는데깜깜해지는데무서운데 오랜 기억은 가깝고가까운 기억은 자꾸 달아난다내 아이의 엄마와 내 엄마의 아이 사이는자꾸 희미해지고나는 지금엄마일까아이일까어디가 어디일까언제는 언제일까 *2025년 여름호 문학 수(秀) 발표

발표작품 2025.06.06

완곡하게 내 몸에 들어와 / 이서린

완곡하게 내 몸에 들어와 -이서린 창을 등지고 노트북을 펼쳤다, 순간 화면 가득 들어찬 아직 이파리 하나 피우지 않은 늙고 거대한나무의 위엄, 촘촘하고 뒤틀리고 빼곡한 나뭇가지가 점령한 노트북, 크고 검은 새가 화면에 들어왔다 사라지고 저물어가는 하늘이 들어와 앉고 웅웅거리는 바람 소리도 들어앉고 화면에 박힌 거대한 나무에 압도된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커녕 눈과 손은, 노트북에 뿌리내리고 화면 밖으로 뻗어 가는 나무를 보기만 하는데 나무는 어둠 속에서 숨을 쉬고 자라고 촉수를 뻗어 나의 생각을 더듬고 주변이 캄캄할 때까지 조용히 그리고 완곡하게내 몸에 들어왔다 아랫도리가 더워지고 부풀어 오르다 뻐근해지는 손끝, 손가락에서 돋아난 나뭇가지가 노트북을 휘감았다 휘고 꺾이고 뒤틀린, 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