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다시, 진달래꽃 / 김병수

주선화 2022. 2. 9. 12:09

다시, 진달래꽃

 

ㅡ김병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락가수가 부른다 마야라고 했던가 목소리가 뚫린다

마야 저 잉카제국의 라틴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저 마야

공중파 방송을 타고 뿌려지는 시인 김소월

한 세기를 건너뛰고 가요차트 1위까지 오른다

님을 보내지 못하는 애달픈 곡소리가 락으로 전이된다

락, 락의 정신을 소유한 저 시원한 목소리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스피커에서 찢어질 듯 퍼져 나온다

가끔, 체게바라 사진이 걸린 뮤직비디오 라틴 아메리카

수염에서 흘러나오는 여성락커의 진달래꽃은

영변寧邊에 약산藥山보다 너무 멀리서 온 것일까

목소리에 힘이 실린 만큼 진달래꽃은 시들시들해져간다

메가박스 복합상영관에서 줄을 서고 있는 

저 헤드폰 귀를 봉합하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린단다

브라운관 현란한 조명아래 마야가 진달래꽃을 부른다

베이스 기타와 전자 기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드럼은 찢어지고 있었다

더 강렬하게 불러야 고막 정도는 너끈히 찢을 수 있어야

듣기가 더 좋다 주파수를 잘 맞추어야 들리는 

도로를 잡아먹을 듯 덤비는 스포츠카 광폭타이어

안락한 가죽시트와 중저음 스피커를 통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비트박스

비내리는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 유리창이 빗방울을 떨어낼 정도의

그래야 속도감이 최고의 절정을 만들어낸다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 밟고 가는 한 세기를 넘어온 시인

광폭타이어 속도를 아시는가

사뿐히 즈려 밟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5분 안에 끝나버리는 락의 속도에는

락커가 시인이 된 시대

한달도 못되어 폐기된 진달래꽃

 

 

*제 19회 오월 문학상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