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譫妄
주선화
구순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에
까마귀 한 쌍을 만났다
고속도로 중앙선에 움직임이 없는
어린 까마귀를 물고 날아가려는
큰 까마귀 움직임이 더뎌서
백미러는 그 오후를 질기게 끌고 있었다
순식간에 스치고 이내 멀어졌지만
가끔 우리를 어린 날로 데려가는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낯짝이 가렵다 눈도 안 보인다
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리고
우리는 망연히 언니도 되었다가 남편도 되었다가
나이 들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부모를 위해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는데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우리가 내미는
맛있는 사탕도 쓰다 하고 좋아하던 참외도 안 먹는다 하고
어머니가 제일 기다리는 건
저 따뜻한 봄날 햇살 한 줌 따라
삽짝문 열고 선바람으로 찾아가는
먼 우리 집
*2023년 영남문학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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