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섬망譫妄 / 주선화

주선화 2023. 7. 19. 09:23

섬망譫妄

 

주선화

 

 

구순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에

까마귀 한 쌍을 만났다

 

고속도로 중앙선에 움직임이 없는

어린 까마귀를 물고 날아가려는

큰 까마귀 움직임이 더뎌서

백미러는 그 오후를 질기게 끌고 있었다

 

순식간에 스치고 이내 멀어졌지만

가끔 우리를 어린 날로 데려가는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낯짝이 가렵다 눈도 안 보인다

아이가 되어 투정을 부리고

우리는 망연히 언니도 되었다가 남편도 되었다가

 

나이 들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부모를 위해

까마귀는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는데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우리가 내미는

맛있는 사탕도 쓰다 하고 좋아하던 참외도 안 먹는다 하고

어머니가 제일 기다리는 건

 

저 따뜻한 봄날 햇살 한 줌 따라

삽짝문 열고 선바람으로 찾아가는

 

먼 우리 집

 

 

 
*2023년 영남문학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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