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2025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주선화 2025. 2. 3. 09:35

동아일보

 

절연 / 류한월

 

 

불꽃이 튄 자리엔 그을음이 남아 있고

뭉쳐진 전선 끝은 서로 등을 돌린 채로

흐르던 전류마저도 구부러져 잠들었다

 

구리 선을 품에 안은 검은색 피복처럼

한 겹 두 겹 둘러싸는 새까만 침묵으로

철로 된 마음속에서 절연되는 가족들

 

한 번의 접점으로 미세 전류 흐르는데

묻어둔 절연층엔 전하지 못한 말들이

심장의 전압 내리고 가닿은 길 찾으려

 

* 심사위원 <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경상일보

 

인사이더 식사법 / 오향숙

 

 

푸성귀 같은 날들 집으로 가져와서

큰 그릇에 버무리면 사람이 모여든다

내 편과 네 편의 입맛 한때는 겉돌아도

 

속속들이 배어든 유연한 참기름 말

제 각각 살아있는 뿌리의 속마음은

밖으로 내뱉지 않아 싸울수록 순해진다

 

싱거운 나의 하루 쓴맛이 녹아들어

혀가 만든 비법 하나 스며든 인사이더

싱싱한 유일한 재료 입 닫고 귀를 연다

 

* 심사위원 <김영재 시조시인>

 

 

 

경남신문

 

소원의 가격 / 최태식

 

 

소원 판매점에는 기도값이 각각이다

산중턱에 자리한 바람이 줄을 설 때

양초는 제 몸에 쓰인 문구에 집중한다

 

절박한 크기마다 생각이 많아져서

정갈하게 모셔 놓아 소원이 즐비한 집

기도발 소문에 끌려 사람들 모여든다

 

몸 낮춘 자리마다 촛불은 뜨거워져

쉽게 살 수 없는 꿈 저마다 간절한데

묵중한 내일 앞에서 오늘은 빈 몸이다

 

* 심사위원 <이달균, 임성구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