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예지몽(외 1편) / 정수아

주선화 2025. 3. 20. 13:32

예지몽(외 1편)

 

-정수아

 

 

그 숲에는 신기루가 삽니다

우리는 야릇한 것을 숨기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신기루가 될 수 있습니까

 

종려나무는 구름을 부릅니다

잎도 꽃도 젖습니다

꽃잎을 따다가 몸을 헹굽니다

 

우리도 잎이 될 수 있습니까

 

음지식물이 바람에 걸려 음표가 피어납니다

숲은 불협화음으로 연주가 시작됩니다

비단뱀이 스산하게 기어오릅니다

우리는 까치발로 걷습니다

 

물방울이 늘어져 아칸서스잎에 달라붙어

중얼거립니다 신기루는 힘이 셉니다

 

숨은 잎들 앞에서 얇아졌습니다

초록은 언제나 초록입니까

 

새들은 종려나무 위에 앉습니다

구멍 뚫인 잎에 가느다란 빛이 들어옵니다

 

손을 뻗어 그 빛을 잡습니다

물고기가 손안에서 펄떡입니다

비가 되어 쏟아집니다

 

까딱하면 건조해지기 쉬운 날들이 많습니다

가끔 당신을 부르면 폭우가 쏟아집니다

 

숲은 저녁이 들어와서 문을 닫습니다

내 귀에 꽂혀 있는 에어팟이 빠집니다

 

 

 

 

기차가 지나가는 화요일

 

 

바퀴는 굴러가는데 기차는 멈췄어요

한 조각 구름이 창문에 닿았지요

 

닫힌 창문 너머

고즈넉한 산사나무 꽃이 햇살을 만나 물방울처럼 반짝여요

거기서 흰 새들이 태어나요

새들은 추상적으로 흩어져요

 

기차는 구름처럼 산사나무 꽃을 지나가요

 

기차가 출렁였어요 커튼도 흔들렸고요

창가에 빛이 앉았어요 꽃이 피는 소리가 들리고

붉은 빛이 태어났어요

 

벽에 걸려있는 그림에서 소녀가 걸어나와요

그것은 아득해서 금방 사라져요

 

기차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어느 강을 지나가요

 

물 위에 부셔진 것들이 한 줌의 빛인지 마음인지 모르겠어요

 

가만히 깊은 곳까지 무심하게 들여다 봤어요

입을 다문 조개 껍데기가 돌멩이에 붙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요

 

산사나무는 바람을 만나 천천히 반짝여요

 

화요일에 기차를 타고 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지나가는 것들의 풍경을 닫고

손을 가볍게 이마에 대어보아요

발밑 그림자가 길어지고

기차는 흘린 기억을 밟으며 비스듬히 지나가요

미래처럼

 

의자 깊숙한 곳에 석양을 기대어 앉았어요

 

나도 흔들리고 기차도 흔들려요

기차소리는 오래되고

먼 곳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산사나무 꽃이 부풀어오르면

우리는 그곳을 안개라고 불러요

 

천천히

솟아오르는 안개

 

모퉁이를 빠져나가는 기차

기차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둥글게 몸을 말고

기차사이로 지나가는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