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문장
-김 휼
흰 문장을 읽는다
묵음의 무게가 심장보다 무거워 주저앉은,
매번 다른 말로 읽히는 줄거리의 결말은 열려있다
어느 날 돌아보면 주어가 바뀌고 서술어에 붙어 안긴
문장은 목적어를 내게 물어온다
기록과 기억 사이
지워야 완성이 되는 이 문장의 방식은 믿음을 요하는
신앙에 가깝다
아버지가 생략된 나에게 봄은 언제나 바깥이었다
술잔을 돌리는 손목 끝에서 그려지는 동그라미는
떠난 자의 영혼, 어떤 부재는 너무 구체적이어서 더
듬다 보면 젖기도 했다
무명천으로 동여맨 얼굴을 더듬듯 백비*를 읽는다 울
음에서 시작된 짐작들로 채워진 이 침묵의 경전은 나
비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할 생의 목록일진대,
환부를 감싼 흰빛 위에 빽빽이 채워진 말 교열이 어긋
난 이 비문을 누가 해독해 줄까
등 돌린 괄호에 질문이 잠기고
부재 속 당신은 익명의 빈칸을 서성이고 있다
*제주 4.3 평화공원 기념관 초입에 누워 있다. 4.3 정명이
정립되면 백비에 새기고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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