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제 26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품

주선화 2025. 2. 18. 17:04

방아쇠수지증후군

 

- 강성남

 

 

오른쪽 엄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일자로 굳어 구부러지지 않거나, 기역자로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기를 반복한다

억울한 맘이 들었는지 자다가도 심통을 부린다

 

손가락 하나를 지나치게 부려먹었다

힘줄이 부어 마디와 마디 소통이 안 된다

물건을 집는 것은 물론 매듭을 풀거나

펜을 집는 일, 문 여는 일조차도 힘겁다

 

힘줄 몇 가닥이 손목과 어깨, 생활 전체에 통증을 준다

주사를 맞고 레이저 시술 10분, 파라핀 요법 20분, 

탈리플루메이트 정, 에렉신 정, 아르티스 정

약부작용이 있다하니 페니라민 정까지 처방해준다

 

낫으로 무를 자르다가 검지를 잘랐던 어머니

국문과에 가고 싶다는 내게, 동생들은 어떻게 하냐고

내 꿈을 단칼에 자르셨다

나는 떨어진 지골이 되어 팔딱팔딱 뛰며 울었다

 

손에 화농이 잘 드는 큰 동생, 어머니의 첫 번째 손가락이다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둘째

다니던 직장 나와 뒤늦게 자격증 준비하는 막내

모두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다

 

오해의 톱날에, 가난 때문에

한 순간의 실수로 잘려나간 손가락을 생각한다

 

왼손 엄지 정맥혈을 과도로 자른 적이 있다

솟구치는 피를 백지로 받았는데 동맥이, 해당화가 피었다

누군가의 꽃이 피기도 했다

 

손가락 하나에는, X- ray 로도 초음파로도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온몸의 통증이 모여 있는 손가락 때문에

목숨의 방어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폐암 말기인 아버지는 손을 다쳐 손을 쓸 수 없어,

옷에 이불에 똥칠을 하셨다

다음 날로 요양병원에 보내야 했다

 

손은 짝을 잘 만나야 한다, 손가락에도 눈과 귀와 감정이 있다

자신만의 주관과 고집이 있다

 

사랑했지만 그런 줄 몰랐던, 아꼈지만 가장 소홀히 했던

그는 내 오른쪽 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