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온 편지 시인에게 온 편지/이기인 청송교도소에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밥풀냄새가 난다 그쪽도 내 독자다 지금은 봄이군요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새순이 돋아서 좋다 꽃이 피어서 좋다 그쪽도 어쩌다 내 쪽으로 가지를 뻗어서 좋다 검열한 편지지 속에서 삐뚤삐뚤 피어난 꽃 --> 볼펜 한자루에서 피어났다 .. 사진하고 놀기 2008.08.14
허공의 나무 /정끝별 허공의 나무/정끝별 -박수근 풍(風)으로 그 나무에 꽃 없다 피우지 못하고 꺾어버렷다 가슴에 더 할 말 없다고 사랑에게 뻗어가는 어깨 잘라버렸다 마음 다 펼칠 수 없다고 사랑에게 달려가는 발 묻어버렸다 문자 밖에서야 쓰여지게 될 것이라고 터져 나오는 꽃들 삼켜버렸다 그 나무에 숨 없다 뿌리처.. 사진하고 놀기 2008.08.01
초원의 빛 /송찬호 초원의 빛/송찬호 그때가 유월이었던가요 당신이 나를 슬쩍 밀었던가요 그래서 풀밭에 덜렁 누웠을 뿐인데 초록이 나를 때렸죠 등짝에 찰싹, 초록 풀물이 들었죠 나는 왠지 모를 눈물이 핑 돌아 벌떡 일어나, 그 너른 풀밭을 마구 달렸죠 초록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죠 숨은 가쁘고 바람에 머리는 .. 사진하고 놀기 2008.07.29
바다 바다 / 이성복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 사진하고 놀기 2008.07.28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 사진하고 놀기 2008.07.28
Love Adagio /박상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Love Adagio/박 상 순 아직 덜 마른 목재들이 마르는 소리 그의 무른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그의 몸이 마르는 소 리 그의 불행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짐승의 살이 마르는 소리 아직 눅눅한 그의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 사진하고 놀기 2008.07.18
얼굴 반찬 /공광규 얼굴 반찬 /공광규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 사진하고 놀기 2008.07.17
씀바귀 씀바귀 길섶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떠는 친구들 몇 십년 만에 처음 노오란 눈맞춤으로 황홀해하는 수줍어하는 섬머슴애 처럼 안고 싶어라 안기고 싶어라 그 시절 그 추억속으로 돌아 갈 수 없는 그리움 노오랗게 노오랗게 꽃을 피운다 사진하고 놀기 2008.06.14
무향사 한 채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 '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 사진하고 놀기 2008.05.28
죄 (김용택) 죄 / 김용택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것 같은 그 독을 들고 아둥바둥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내 독 깨뜨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물 엎질러 착한 사람들 발등 적신 죄 더 크다 사진하고 놀기 2008.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