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타는 가을江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江)을 처음 보겄네. <1962년>
* 박재삼은 생전에 ' 슬픔의 연금술사 '로 불린 시인이다
시 '눈물 속의 눈물'에서 "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 눈물 속에 새로 또 / 눈물나던 것이네"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시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시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
으로 연결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시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生의 무상을 동뜨게 한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 (자연)이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겄네'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박재삼 시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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