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갈대 등본 / 신용목

주선화 2008. 4. 11. 22:09

갈대 등본 / 신용목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

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모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謀議)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家長)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2004년>

 

 

*

젊은 시인 신용목(34세)은 "바람 교도(敎徒)" (시인 박형준의 말)다.

그의 시 곳곳에는 바람이 불어오고 멈추고 쌓이고 흐른다

독특한 것은 그가 포착하는 바람의 속성인데, 그의 생각에 바람이 쌓이는 것이면서 강하게

'무는 힘'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바람이 비의 칼집을 잡고 서는 날"<바람 농군>에서 처럼 바람을 정지시켜 묶어두거나, "느닷없이 솟구쳐 오르는 검은 봉지를/ 꽉 물고 놓지 않는/ 바람의 위턱과 아래턱"(새들의 페루), 혹은 "나는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라고 써서

바람의 '무는 힘'을 강조 한다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문장이 모 기업의 에어컨 광고 문구로 사용되어 더 많은 이에게 알려진,

 

신용목시인은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젊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 이빨들, 뽀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죄(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罪)가 나를 씻어주겠다"(별)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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