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바람의 육체

주선화 2008. 8. 25. 11:20

바람의 육체/김륭

 

 

 

  몸 안에서 죽은 시간이 머리카락으로 자라

  들어 올린 머리, 팔베개 할 수 없는 달의 무덤가로 훌쩍 키만 자란

  바람이 울어 자꾸 울어 손발만 그려주면 사람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당신

 

  털썩, 주저앉아 바닥칠 수 없는 나무를 갈비뼈 삼아 육체를 드러내는 당신은 라면박스로 집 지어준 새끼고양이 같아서 우리 어머니 죽어서도 고삐를 놓지 않을 송아지 같아서

  운다 자꾸 울어서 죽지 않는다 살아서 울며

  울어서 죽음마저 깨운다

 

  울어라, 울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울음의 솔기가 풀릴 때마다

  돋보기 쓴 어머니 바늘에 실 꿰고 나는 낮은 지붕 위로

  가만히 눈물 한 장 더 얹어둔다

 

  문 쪼매 열어봐라

  너그 아부지 왔는갑다

 

 

 

♧시작노트

 

 

말할 수 없는 것들의 입안에 진실이 담겨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혀는 보다 싱싱한 죽음을 위해 키우는 한 마리 물고기, 붉은 살을 가진 바닷물고기처럼 싹둑 눈꺼풀이라도 잘라내야 하는 걸까. 울음마저 너무 말라비틀어진 탓일 것 같다. 요즘은 자주 구름이 얼굴을 만지러 내려온다.

 

 

<문학나무 200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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