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고영민
새벽녘 만삭의 아내가 잠꼬대를 하면서 운다. 흔들어 깨워보니 있지도 않은 내 작은마누라와 꿈속에서 한바탕 싸움질을 했다. 어깨숨을 쉬면서 울멍울멍 이야기하다 자신도 우스운 듯 삐죽 웃음을 문다. 새벽 댓바람부터 나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본다. 작은마누라가 예쁘더냐, 조심스레 물으니 물닭처럼 끄덕인다. 큼직한 뱃속 한가득 불안을 채우고 아내는 다시 잠이 들고, 문득 그 꿈속을 다녀간 작은마누라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 잠든 아내여, 그리고 근처를 서성이는 또다른 아내여. 이 늦봄의 새벽녘, 나는 지척의 마음 한자락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언제쯤 아내가 숨겨놓은 작은마누라를 내 속으로 몰래 옮겨 올 수 있을까. 번하게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아내의 꿈속을 오지게도 다녀간 사납지만 얼굴 반반한 내 작은마누라를 슬그머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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