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아주 붉은 현기증(천수호) /책 중에서

주선화 2009. 5. 19. 13:45

밤늦게 지하철을 타 본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
지친 승객들의 조는 모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예 깊은 잠에 빠져있는 사람,
옆자리 처녀에게 꼬박꼬박 질문하듯이 조는 청년,
머리를 뒤로 재치고 입을 벌리고 조는 취객의 모습을
생동하는 봄씨앗에 비유한 시인이 있다.
<아주 붉은 현기증>의 시인 천수호이다.



요긴한 가방

씨앗도 아니면서
들썩거리는 봄 씨앗같이 입 헤 벌리고
잠에 취한 사람들,
자정이 넘은 지하철 안은 헐렁헐렁하다
씨앗마다 흔들리는
가방 하나씩 품었다
이제
씨방은 입이 아니라 가방이다
가방 속에는
꽃잎 덧칠하는 붉은 립스틱과
꽃술 올리는 마스카라
풀잎색 아이섀도가 들어있다
입을 꼭 다문 여자가
가방만 꼭 껴안은 그녀가
박쥐처럼 매달린 TV화면을 본다
지하철이 가방처럼 품고 있는 텔레비전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뉴스 자막도 흔들린다
흔들림은 애초에 달래고 어르는 몸짓이었듯
화면에 중독된 그녀도 잠든다
이내 벌어지는 색 바랜 입술
가방을 놓치면 피울 수 없는 새잎과 새꽃술
가방은 이제 어디든 따라간다
길만 따라가는 이 도시도
하나의 요긴한 가방이다 

 

시인은
입을 벌리고 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입 속에서
금방이라도 푸른 싹이 틀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낀다.
지친 사람들의 모습은 찬 땅속에서 겨울을 견딘 봄씨앗 같다.
마치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딱딱한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나듯이,
지치고 힘든 도시인의 일상도 내일이면 다시 새잎을 틔운다.
이 잠은 누구나에게 요긴하다.
시인의 이러한 역동적 상상력은
도시인의 삶에 싱싱한 힘을 불어넣어준다.
시인은 또한
지하철 안에서 처음 만난 아기의 눈 속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느낀다.
시 <아득한 봄>이 그것이다.
시인은 아기의 천진한 눈동자를
“꽉 찬 조바심과 팽팽한 호기심으로/두 주먹 탱글탱글 쥔 동공”으로 묘사하며
마침내 “터져라, 씨앗/새잎과 새싹을 품고 있는 저 눈” 이라며 주술을 가한다.
그것은 시인의 의식 속에 있는 무한한 생명력과
자연친화적 상상력이 빚어낸 것이다.
시인의 시를 보고 있으면
내 몸에서도 마치 새순이 뾰족이 올라올 것 같다

 

 

 

아주 붉은 현기증! 이 강렬한 제목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시집을 펼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다. 목차에서 ‘빨간 잠’이 눈에 띄었다. 이 시가 제목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엔 벼랑이 있다. 그 말이 갖는 유혹에 한없이 빠져든다면 그것은 나르시시즘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면 그 아름다움은 이내 벼랑을 만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는 상대에게 직접 쓸 때 갖는 현혹성은 또 한번 이성의 벼랑을 만나게 한다. 이 언어의 위태로움을 바지랑대 끝에 졸고 있는 잠자리에 비유한 시인의 상상력은 탁월하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이내 그것을 한 여인의 짧은 졸음에 비유함으로서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을 준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유혹이 있다.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 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한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



시인의 언어에 대한 천착은 ‘문막’이라는 시에서도 계속된다. 문막은 서울에서 강릉 쪽으로 갈 때 들르는 휴게소이름이다. 이 문막이라는 지명에서 시인의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꼬막’‘문학’‘피막’과 같은 낱말이 출현하는 것도 이 지명과 관련이 있다. ‘숙여 들어가거나 들고 나와야 할 것 같이’ 치렁한 막을 느끼게 하는 이 지명은 휴게소 라는 누구나 들를 수 있는 공간과 연결시킴으로서 자연스럽게 이것이 외도(外道)와 공통점이 있음을 눈치채게 한다. 가을에 갖는 서정성은 누구나에게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얕은 바람기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시인의 언어감각은 단순한 말놀이이거나 언어유희에 그치지 않는 깊은 사유의 힘을 갖고 있다. 이 시집은 이러한 시인의 맛깔스런 언어감각과 시인의 서사를 엿볼 수 있는 멋진 시집이다.


外道


처음 알게 된 지명, 문막
꼬막이라는 꽉 다문 조개이름이거나
문학이라는 내 측근 학문 같이 서늘한
문막 휴게소

숙여 들어가거나 들고 나와야할 것 같이
어떤 치렁한 막이 있는 지명

설레거나 깜깜하거나 두 개의 극단심리를 가지게 하는 문과 막

휴게소란 그런 것
누구에게나 쉽게 열어젖히는 가을 서정의 피막 같은 거

지명을 간판으로 내건 휴게소에서
잠깐 서성이다 돌아갈 뿐
아무도 그 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깊숙이 살 숨겨놓고
껍데기만 들었다 놓는 꼬막의 늦고 더딘 외도가
문막에 와서야 덜컥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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