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오탁번
솜털 모자를 쓰고
시계 태엽처럼 돌돌 말려서 나온
고비 새싹이
아슬아슬 꽃샘바람에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
감기들어 콜록거리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찬다
-고비가 너보다 낫다!
감기들까봐
솜털 모자 쓰고 나온것 좀 봐라
할아버지는
나보다
고비가 더 예쁜가 보다
꽃샘바람 매운지
어떻게 알고
고비는 솜털 모자를 썼을까
연못
, 같은 올챙이가
! 같은
새끼 붕어한데 놀라
연잎 위로
잽싸게 도망친다
새끼 붕어는
물속으로 숨고
연잎 위의
올챙이는
목이 말라
? 처럼 꼬물거린다
봄나들이
오요요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다가
뒷다리 하나 들고
오줌 싸는
쌀강아지
한 다리 들고 선
논둑 위의
왜가리가
싱겁게 바라본다
해피 버스데이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ㅡ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ㅡ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ㅡ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해피 버스데이 투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짝젖
엄마 젖은
짝젖
내가 한쪽 젖만
자꾸 빨고 만지는 바람에
짝짝이가 됐다고
엄마는눈을 홀긴다
ㅡ 나중에 커서 돈 벌면
엄마 젖 성형수술시켜 줘야해!
누나 젖은
양쪽이 봉긋하니 똑 같다
나하고 띠동갑
우리 누나는
엄마가 바쁠 때면
날 데리고 목욕탕에 간다
내 손이 살짝
누나 가슴에 닿으면
ㅡ 나도 작짝이 만들거야?
누나도 괜히 눈을 홀긴다
봄
똑똑똑 똑똑똑 똑도그르르
딱따구리 소리가
봄 아침을 깨운다
봄이 왔어요!
느티나무 늦잠을 깨우느라고
딱따구리는 부리가 아프다
저승의 잠에서 갠
무너미골 큰할머니가
할미꽃 한 송이
안테나 삼아
새싹 돋는 바깥 세상
엿듣고 있다
에헴
할아버지는
노크할 줄을 모른다
에헴! 에헴!
늦잠 자는 나를 깨울 때도
화장실에 강 때도
에헴!
할아버지는 말도 하지 않는다
숭늉을 마시고도
에헴!
노인정에 갈 때도
집에 돌아올 때도
에헴!
낱말 뜻 쓰며 국어 숙제하는
나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또 에헴! 하길래
ㅡ 에헴이 무슨 뜻이야?
내가 묻자
틀니가 헐거워서
입이 합죽해진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는다
ㅡ 에헴이 에헴이지
뜻은 무슨 뜻?
아, 아무 뜻도 없는 말을
잘도 하는
우리 할아버지!
나만 보면 그냥 행복한
우리 할아버지!
나도 할아버지를 흉내내본다
ㅡ 에엠!
봄편지
무당새가 우편함에 또 알을 깠다
올해는
큰 우편함 작은 우편함
양쪽에 다 둥지를 틀었다
주근깨 나란한 하늘빛 알이
다섯 개씩
앙증맞은 둥지 안에
반가운 편지처럼 다소곳하다
무당새가 우편함에 둥지를 틀면
우체부 아저씨는 골치 아프지만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한다
우편함 대신으로
대문 옆에 갖다놓은 항아리 안에
편지를 넣던 우체부가
우리 할아버지 흉을 본다
ㅡ 어르신은 꼭 애들 같아요
예쁜 무당새가
아기자기 봄소식 전해주는
애련리 198번지
우리 할아버지 집
배꼽시계
불알시계는
하루에 10분 씩 빨리 가고
아빠의 손목시계는
하루에 5분씩 늦게 간다
밥 때 되면
종을 치는
내 시계가 최고다
내가 커서
레스토랑을 차리면
간판을 이렇게 달겠다
'배꼽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