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공 / 임창아
셔틀콕은 위에서 노는 버릇이 있다 자고로
위에서 노는 것들은 꼭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실은 그게 아니라
셔틀콕은 그저 선하나 긋기 위해 분주했을 뿐, 본래
하나였던 이쪽저쪽 네트가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 하나 위해 팔매질 수 십 번 했고
공 앞에 수없이 무릎을 꿇었다 또
허공은 얼마나 아팠겠으며
바닥치는 공은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죽어가는 공으로 곡선은 그을 수 있지만
게임으로 이기려면 곡선으로는 약하다
독 오른 꽃뱀처럼 아가미 벌려 날아오는 공
살아있는 상태로 때려잡으려면
바닥을 차고 올라 몌각으로 내리쳐야 한다 하지만
승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쪽과 저쪽 이은 공이 선을 이루고
그 선이 나와 만나 면을 이룰 때,
비로소 땀도 맘 놓고 흐른다
어떤 일의 순서 / 임창아
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
우리 집 수소 교미 한 번 붙인 돈은
자취하던 내 한 달 생활비였다
덤으로 나는
남녀관계와 성교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눈 뜨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신 수컷은 제법
비싸게 놀 줄 알았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공연히 꼬리 흔들어 쇠파리를 쫓겨나
엉덩이 슬슬 피해가며
음부가 더부룩한 암컷 몸 달군다
그러다 어지간하다 싶을 때 한 순간
사정없이 올라타는 수컷
9회 말 끝내기 안타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그 저력
놀란 암컷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염치없이 질금질금 물똥 싸 재끼지만
절정은 언제나 너무 짧다
그처럼 어떤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
사정 끝내고 암컷 골고루 핥아주는
수컷의 신사적 마무리까지
저 말없음의 예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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