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

시인세계 상반기 신인상 2009

주선화 2009. 9. 9. 10:42

살아있는 공 / 임창아

 

셔틀콕은 위에서 노는 버릇이 있다 자고로

위에서 노는 것들은 꼭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실은 그게 아니라

셔틀콕은 그저 선하나 긋기 위해 분주했을 뿐, 본래

하나였던 이쪽저쪽 네트가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 하나 위해 팔매질 수 십 번 했고

공 앞에 수없이 무릎을 꿇었다 또

허공은 얼마나 아팠겠으며

바닥치는 공은 얼마나 민망했겠는가

죽어가는 공으로 곡선은 그을 수 있지만

게임으로 이기려면 곡선으로는 약하다

독 오른 꽃뱀처럼 아가미 벌려 날아오는 공

살아있는 상태로 때려잡으려면

바닥을 차고 올라 몌각으로 내리쳐야 한다 하지만

승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쪽과 저쪽 이은 공이 선을 이루고

그 선이 나와 만나 면을 이룰 때,

비로소 땀도 맘 놓고 흐른다

 

 

어떤 일의 순서 / 임창아

 

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

우리 집 수소 교미 한 번 붙인 돈은

자취하던 내 한 달 생활비였다

덤으로 나는

남녀관계와 성교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눈 뜨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신 수컷은 제법

비싸게 놀 줄 알았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공연히 꼬리 흔들어 쇠파리를 쫓겨나

엉덩이 슬슬 피해가며

음부가 더부룩한 암컷 몸 달군다

그러다 어지간하다 싶을 때 한 순간

사정없이 올라타는 수컷

9회 말 끝내기 안타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그 저력

놀란 암컷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염치없이 질금질금 물똥 싸 재끼지만

절정은 언제나 너무 짧다

그처럼 어떤 일에도 순서가 있는 법,

사정 끝내고 암컷 골고루 핥아주는

수컷의 신사적 마무리까지

저 말없음의 예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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