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도경(道經)
제 1장 체도(體道)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변함없는 도가 아니며,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을 때는 우주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을 때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없음은 그 묘함을 보고 항상 욕심이 있음은 미세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을 본다. 이 둘은 다 같은 데서 나왔고 이름만 서로 다를 뿐이며, 그 둘은 같아서 모두 현묘하다. 아무리 알려 해도 알 수 없는 그것은 모든 사물의 현묘함이 들고나는 문이다.
제 2장 양신(養身)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미가 되는 것은 언제나 미인 줄 알지만, 그 미란 것이 오히려 추가 된다는 것을 모르며, 그리고 누구나 선이 되는 것은 언제나 선인 줄 알고 있지만, 그 선이 도리어 악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룩되고, 긴 것과 짧은 것이 서로 드러나며,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고, 홀소리와 닿소리가 서로 어울리며, 앞 뒤가 서로 따른다. 이렇기 때문에 성인은 무위가 하는 대로 맡겨 둔다. 행하되 말로 가르치려 들지 않고, 만물이 이루어지되 말꼬리를 달지 않으며, 낳아주되 갖지 않으며, 되게 해주되 그렇다고 믿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지만 머물러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제 3장 안민(安民)
아는 것이 많아 현명하다고 하는 자를 높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백성으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한다. 얻기 힘든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되며, 지나친 허욕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문란하게 되지 않는다. 성인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아래와 같이 한다. 마음을 비우게 하며, 배를 부르게 하고, 허영된 뜻을 약하게 하며, 몸을 튼튼하게 해주라. 그리고 항상 백성에게 지식을 앞세우지 않게 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게 할 것이고, 아는 자들이 턱없는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라. 무위로 정치를 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다.
제 4장 무원(無源)
도는 빈 것을 쓰되 때로는 꽉 채우지 않는다. 그래서 깊고 깊어 가늠할 길이 없노라. 도는 만물의 뿌리와 같다.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며, 뿔뿔이 흩어진 것을 해결하고 빛살을 어울리게 하며, 보잘 것 없는 것도 같게 한다. 깊고 깊어 알 수는 없으나 어쩌면 존재의 모습 같다. 나는 그 도가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신보다 먼저 있었노라.
제 5장 허용(虛用)
천지는 인간처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삼는다. 성인도 천지를 닮아 백성을 길가에 버려진 풀강아지처럼 삼는다. 천지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 풀무 속은 텅 비어서 아무리 풀무질을 해도 다함이 없고, 풀무질을 할수록 더욱 나온다. 이에 대하여 말이 많으면 궁해질 뿐 알맞음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제 6장 성상(成象)
도를 말로 비유해서 말하자면 텅 빈 산 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신비로운 암컷이라고 한다. 신비로운 암컷의 자궁을 천지의 뿌리라고 한다.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자궁의 문을 아무리 써도 다하여 없어지지 않는다.
제 7장 도광(韜光)
하늘은 길고 땅은 영원하다. 천지가 길 수도 있고 오래일 수도 있음으로써 제 욕심을 내세워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길이길이 오래 살 수가 있다. 성인은 천장지구를 본받아 자기를 뒤로 하고 남을 앞세우며 자신을 잊고 있으므로 자신을 존속하게 한다. 그렇다면 성인에게는 자기가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자신을 없애므로 자신을 능히 이룩할 수가 있다.
제 8장 역성(易性)
지극한 선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할 뿐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극한 선은 도에 가깝다. 사는 것은 땅을 좋아하며, 마음은 깊은 곳을 좋아하고, 더불어 있는 것은 어질기를 좋아하고, 말은 신용을 좋아하며, 정치는 다스리기를 좋아하고, 일하는 것은 능력을 좋아하며, 움직임은 제 때를 좋아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모름지기 다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못이란 것은 없다.
제 9장 운이(運夷)
간직하여 가득 채우려는 것은 하나도 갖지 않는 것만 못하다. 헤아리는 바가 날카롭기만 하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금과 옥이 방 안에 그득 차면 도둑의 손길에서 지켜낼 수가 없다. 부귀를 누린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더러운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이 이루어지면 이름을 물리치고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제 10장 능위(能爲)
만물을 분별하지 않고 하나로 안고 있는 도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는가? 생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 부드러움이 지극하여 갓난아이 같이 될 수 없는가? 씻고 털어내 맑은 거울처럼 마음에서 때를 벗겨낼 수 없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조작하는 짓을 없앨 수 없는가? 하늘의 문을 열고 닫는데 암컷이 될 수 없는가? 명백이 사방으로 두루 통하는 앎은 없는가? 낳아 주고 길러 준다. 그러나 낳아 줄 뿐 갖지는 않는다. 일을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주재하지 않는다. 이를 깊고 넓어 신비로운 덕이라고 한다.
제 11장 무용(無用)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두 바퀴 구멍 주위로 모이고 바퀴 구멍이 있으므로 수레의 쓰임새가 있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 속이 비어 있으므로 그릇의 쓰임새가 있다. 벽을 뚫어 외짝문과 창을 내야 방이 되는데 빈 곳이 있어야 방의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있는 것으로써 이로움을 삼고 없는 것으로써 작용을 삼는다.
제 12장 검욕(檢欲)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 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오미는 사람의 입을 버리게 한다. 말을 타고 달리며 새나 짐승 사냥을 하는 짓은 인간의 마음을 미쳐 버리게 한다.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동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이러하므로 성인은 배를 채울 뿐 겉치레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색, 오미, 오음 등을 버리고 배부름을 택한다.
제 13장 염치(厭恥)
총애를 받는 것도 황송하게 여기고 버림받는 것도 황송하게 여기고, 큰 근심 걱정을 내 몸같이 귀하게 하라. 총애를 받든 잃든 황송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총애는 위에서 주고 버림은 아래서 받거늘, 총애를 받아도 황송하게 여기고 총애를 잃어도 황송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를 총욕 약경이라고 한다. 큰 근심이나 걱정을 제 몸같이 귀하게 하라 함은 어떤 것이냐? 나에게 큰 근심 걱정이 있다는 것은 내 몸이 있는 까닭이며, 만일 나에게 몸이 없다면 어찌 나에게 큰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제 몸을 위하는 것보다 천하를 귀하게 하는 자는 천하와 더불어 살 수가 있고, 제 몸을 위하는 것보다 천하를 사랑하는 자는 천하를 맡을 수 있다.
제 14장 찬현(贊玄)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라고 한다.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라고 한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아무리 규명해 보아도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혼연하면서도 하나이게 된다. 아무리 사유해 보아도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감성으로 만나면 분명하다. 이어지고 이어진 끈 같아라.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없지만 무물로 되 돌아오는구나. 이를 일러 모습이 없는 것의 모습이라 하고, 동작이 없는 것의 동작을 일러 황홀이라고 한다. 도를 맞이해도 그 앞을 볼 수가 없고, 도를 따라가도 그 뒤를 볼 수가 없다. 우주만물이 있기 전의 도를 붙들고 간직하며, 지금에 있는 것을 다스려 보면 맨 처음 시작되었던 것을 알아 볼 수는 있다. 이를 일러 도의 발자취라고 한다.
제 15장 현덕(顯德)
도의 경지에 들어 간 선비가 된다는 것은 그 모습이 미묘하고 깊고 깊어서 아무리 깊이 헤아려도 알 수가 없고 아무리 따져 보아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억지로라도 그 모습을 비유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추운 겨울 냇물을 건너기를 망설이는 코끼리 같구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두려워 조심하는 개 같기도 하구나! 초대받아 손님으로 간 것처럼 엄숙하구나! 앞으로 녹아 물이 될 얼음처럼 풀리는구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무 등걸처럼 꾸밈이 없구나! 텅 빈 고을처럼 비어 있구나! 탁류에 휩쓸려 있는 것 같지만 맑은 물이구나! 누가 탁류에 머물러, 가만히 있으면서도 서서히 맑게 할 것인가? 누가 편안히 영주하면서 활동해 서서히 맑음을 살아나게 할 것인가? 이러한 도를 간직한 자는 무엇을 채울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채울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이는 있던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이룩하려고 하지 않는다.
제 16장 귀근(歸根)
비워내고 비워내 텅텅 비게 하라. 고요하고 고요해 도타움을 지켜라. 만물이 모두 아울러 이루어 지는구나! 내가 그 만물이 되돌아감을 가만히 살펴 볼 때 무릇 무엇이나 무럭무럭 피어나 저마다 본래의 뿌리로 되돌아가는구나.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고 한다. 고요함을 명에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명에 따르는 것을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변함이 없는 것을 아는 것이 밝음이라고 한다. 변함이 없는 것을 모르면 경망스러워 흉한 짓을 범한다. 변함이 없음을 아는 것을 포용이라고 한다. 변함없음을 아는 것은 두로 통하는 것이며, 두루 통하는 것은 왕복하는 것이고, 왕복하는 것은 하늘이며, 하늘은 어디나 통하는 길이고, 그 길은 영원하다. 그러면 몰락하게 하려는 것이 있다 해도 자신은 위태롭지 않다.
제 17장 순풍(淳風)
더할 바 없이 훌륭한 임금은 임금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백성이 모르게 한다. 그 다음으로 훌륭한 임금은 임금노릇을 친절하게 하여 백성들로부터 명예를 얻는다. 그 다음보다 못한 임금은 임금노릇을 두렵게 하고, 아주 못난 임금은 임금노릇을 부끄럽게 하여 백성의 신뢰를 얻지 못해 불신을 당한다. 말을 귀하게 하니 다스림이 유연하구나! 덕을 쌓아 이룩하고 말없이 무위로 이루고 다해 백성은 모두 저마다 스스로 그냥 저절로 이르게 된다고 한다.
제 18장 속박(俗薄)
자연의 도를 버리자 인의가 있게 되었고, 인간의 지혜가 나타나자 엄청난 속임수가 있게 되었으며, 육친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게 되자 효도와 자애를 강조하게 되었고, 나라가 혼란해지자 충신이 있게 되었다.
제 19장 환순(還淳)
성인이 된다는 것을 끊어 버리고 지모를 버린다면 백성은 백배로 이롭게 되리라. 어질다는 것을 끊어 버리고 옳다는 것을 버린다면 백성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리라. 기교를 끊어 버리고 이익을 버린다면 도적이 생겨나지 않으리라. 이 세 가지는 인간의 것으로 해결하기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따르게 할 본분이 있다. 소박한 것을 찾아 지니게 할 것이며, 사사로움을 작게 하고 욕심을 줄이게 하는 것이다.
제 20장 이속(異俗)
지식욕을 없애면 근심 걱정은 없어진다. 윗사람에게는 존대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고 하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예하고 답하든 하게로 답하든 그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보기 좋은 것이 있고 보기 싫은 것이 있다지만 눈으로 보는 것일 뿐이라고 친다면 그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바를 나 또한 두려워 할 수밖에는 없다. 마음에 중심을 잡지 못해 어디인지 모르게 이리저리 헤매는 것 같아 황망하구나! 사람들은 봄 언덕에 올라 쇠고기와 양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회포를 풀면서 잔치 기분에 들떠 있다네. 하지만 나 홀로 그럴 줄 몰라 홀가분해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 같구나! 방랑이 길어 돌아 갈 곳이 없는 것 같구나! 사람들은 가진 것들이 많아 여유롭게 살지만 나만 홀로 무엇을 잃어 버린 것 같구나! 나는 천하에 바보같아 순진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사람들은 시비를 가리는데 분명하고 똑똑하지만 나 홀로 멍하니 있는 것 같구나! 사람들은 꼼꼼하고 세심하지만 나만 홀로 담담하다. 덤덤해 소금기 없는 바다 같구나! 이리저리 흘러 다녀 멈출 곳이 없는 것 같구나! 사람들은 모두 잘 적응하고 쓸모가 있지만 나만 홀로 완고하고 누추하구나! 나 홀로 남들과 달라 나를 먹여주고 길러 주는 어머니를 귀하게 여긴다.
제 21장 허심(虛心)
오로지 도에 의해 크고 텅 빈 덕의 움직임은 따른다. 도의 작용인 덕으로 만물이 된다. 황홀하고 황홀하다. 공덕 가운데 움직이는 모습이 있으니 얼마나 황홀한가! 공덕 가운데 만물이 있으니 얼마나 황홀한가! 공덕 가운데 만물의 정수가 있으니 얼마나 아득하고 깊은가! 그 정수는 절대의 진리여서 그 진리 가운데 진실이 있다. 예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이 사라진 적이 없었고, 만물이 펼쳐져 온 내력을 알 수 있다. 내가 만물이 그렇게 되는 내력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위와 같이 도의 공덕의 작용을 터득해서 알게 되었다.
제 22장 익겸(益謙)
휘어진 것이면 온전하게 한다. 굽은 것이면 곧게 한다. 움푹 패인 것이면 채우게 한다. 못 쓰게 되면 새 것이 되게 한다. 적으면 얻게 하고, 많으면 잃게 한다. 이러하므로 성인은 하나를 품어 천하의 법이 되게 한다. 성인은 자기를 과시하지 않으므로 총명하고, 제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으므로 옳게 드러나며, 자기 자랑을 일삼지 않아 공을 이루고, 자기를 뽐내지 않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으며, 다툴 마음이란 아예 없으므로 천하에 어느 누구와도 다툴 수가 없다. 옛날에는 이러한 것들을 휘어진 것이면 온전하다고 일컬었다. 어찌 이 말을 거짓이라 할 것인가! 더 할 바 없이 온전하면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 23장 허무(虛無)
자연은 꾸며서 말하지 않는다. 돌개바람은 한나절을 끌지 못하며, 소낙비는 하루를 버티지 못한다. 무엇이 이렇게 하는가? 천지가 그렇게 한다. 천지도 그렇거늘 하물며 인간이야 말 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도에 따라 일에 임하는 사람은 도가 되어 도와 함께 하며, 얻은 것에 따라 일에 임하는 사람은 얻은 자가 되어 얻은 것과 함께 하고, 잃은 것에 따라 일에 임하는 사람은 잃은 자가 되어 잃은 것과 함께 한다. 도와 함께 하는 사람은 도로 하여금 그를 얻게 하고, 덕과 함께 하는 사람은 덕으로 하여금 그를 얻게 하며, 실을 함께 하는 사람은 실로 하여금 그를 얻게 한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불신이 있게 마련이다.
제 24장 고은(苦恩)
발꿈치를 들고 발가락 끝으로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발걸음을 크게 벌려 성큼성큼 걷는 사람은 오래 갈 수가 없으며,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은 현명할 수 없고,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찬성을 얻어낼 수 없으며, 자화자찬을 일삼는 사람은 성공을 이룩할 수 없고, 오만하고 방자한 사람은 유능하고 뛰어난 자가 아니다. 자연의 도에 따라 보자면 위와 같은 짓들은 날마다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에 불과하고 얼굴에 매달린 혹부리에 불과한 것이며, 만물도 이를 싫어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도에 따르는 사람은 그러한 짓에 물들지 않는다.
제 25장 상원(象元)
혼성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하나는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 그 하나는 너무 고요해 들을 수 없고 너무 아득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 하나는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독립해 있으므로 바뀌지 않고, 두루두루 작용해도 위태롭지 않다. 그 하나를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억지로 글자로 말한다면 도이고, 억지로 그 이름을 지어 말하자면 크다는 것이다. 그 크다는 것은 끝이 안 보이게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라져가는 것은 아득히 멀어져 떠나는 것이며 아득히 멀리 떠남은 다시 어딘가에서 만나 되돌아오는 것이다. 도가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 또한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도 그 중의 하나로 산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제 26장 중덕(重德)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고요한 것이 조급함을 다스린다. 이로써 성인은 종일토록 행하고 고요함과 무거움에서 떠나지 않는다.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높은 곳에 있는 제비집에서 사는 것처럼 초연하다. 하물며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나라를 가볍게 다룰 것인가? 가벼우면 뿌리를 잃고 조급하면 다스림을 잃는다.
제 27장 교용(巧用)
자연의 도가 행하는 것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자연의 도가 말하는 것에는 잘못된 흠집이 없다. 자연의 도가 셈하는 것에는 계산기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의 도가 닫는 것에는 자물쇠가 없지만 잘 닫혀 열 수가 없다. 자연의 도가 묶어 놓은 것에는 노끈이 없어도 잘 묶어 놓아 풀 수가 없다. 이로써 성인은 변함이 없는 선으로 사람을 구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성인은 변함없는 선으로 만물을 구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만물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대대로 이어오는 크나큰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도의 길을 걷는 자는 도의 길을 벗어난 자의 스승이 되고, 도의 길을 벗어난 자는 선인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스승이라고 해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제자라고 해서 애지중지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비록 자연의 도를 알지라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를 지극히 신비로운 것이라고 한다.
제 28장 반박(反朴)
수컷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암컷이 어떤 것인가를 지키면 천하를 두루 껴안는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자연의 도와 멀어지지 않아 갓난아이로 되돌아간다. 흰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검은 것을 지킨다면 천하의 격식이 된다. 천하에 두루 통하는 격식이 되면 변함없는 덕은 그릇될 수 없게 되어 시비나 분별이 없는 경지로 되돌아간다. 영광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굴욕을 지키면 천하를 넣어 둘 수 있는 텅 빈 고을이 된다. 천하를 넣어 둘 수 있는 텅 빈 고을이 되면 변함없는 덕은 만족되어 순박한 것으로 되돌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토막을 쪼개고 깎고 다듬으면 그릇이 된다. 그러나 성인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활용해 다스리는 장관이 된다. 크게 다스리는 것은 이패저패로 갈라지지 않는다.
제 29장 무위(無爲)
장차 천하를 쟁취해 다스려 보겠다고 욕심을 내는 일이 있다면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욕심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천하는 자연의 도가 만든 것이므로 그러한 욕심은 불가능할 뿐이다. 욕심을 내고 시도하는 자는 패할 것이고, 놓치지 않으려고 틀어쥐고 있는 자는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앞에서 나아가기도 하고 뒤에서 따르기도 하며, 내쉬기도 하고 들여쉬기도 하며,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며, 위에 실리기도 하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으므로 성인은 심한 것을 거두며,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하며, 태만하거나 오만함을 멀리한다.
제 30장 검무(儉武)
자연의 도로써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은 군대의 힘으로 나라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 군대의 힘으로 자행한 일은 그 후환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군대가 주둔하는 자리에는 가시가 돋아나고 병사를 일으켜 큰 전쟁을 치룬 뒤에는 흉년이 들고야 만다. 그러므로 무력을 쓰지 않고 덕을 행하는 자는 스스로 과감할 뿐이다. 선자는 남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과감할 뿐 남에게 과시하지 않으며, 스스로 과감할 뿐 남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않으며, 스스로 과감할 뿐 교만을 떨지 않으며, 스스로 과감할 뿐 결코 획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스스로 과감하되 억지로 힘을 부리지 않음을 말한다. 힘을 쓰는 것은 융성하다 쇠퇴한다. 이를 부도라고 한다. 부도는 일찍 끝나고야 만다.
제 31장 언무(偃武)
무릇 아름다운 무기는 모두 상스럽지 못한 것이다. 만물은 무기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도를 걷는 자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군자가 자신을 다스려 자연에 따라 일에 임할 때는 왼쪽을 귀하게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라는 것은 상스럽지 못한 것이므로 군자가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다. 군자가 어쩔 수 없을 경우에나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안정된 것을 제일로 삼고 승전을 거두어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승전을 아름답게 여기는 자는 사람 죽이는 짓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의 뜻을 이룩할 수가 없다. 좋은 일은 왼쪽을 숭상하고, 흉한 일은 오른쪽을 숭상한다. 전쟁터에서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를 하고,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를 잡는다. 이는 초상이 났을 때 하는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죽은 목숨이 너무 많아 애통해 그 죽음을 울먹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상가에서 지켜지는 예를 따른다.
제 32장 성덕(聖德)
도는 한결같고 이름이 없다. 도는 원목의 등걸처럼 그대로인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천하도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군왕이 만일 이러한 도를 따라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장차 저절로 보배가 될 것이므로 천지가 서로 합하여 단비를 내릴 것이요,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골고루 평등해질 것이다. 이것저것 분별하는 제도가 시작되어 이름이 붙게 된다. 이름이 있는 것은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하는 이름에 붙들려 있지 말고 무릇 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변함이 없는 도에 머물러 있을 줄 알라. 그러면 위태로울 것이 없다. 도의 작용에 천하가 있다는 것을 비유해 말하자면, 산골짜기의 개울이 시내가 되어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과 같다.
제 33장 변덕(辯德)
남을 알려고 하는 자는 겉만을 아는 자이고, 자기를 알려고 하는 자는 속을 아는 자이다. 남을 이기려는 자에게는 힘이 있고, 자기를 이겨내는 자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고, 자기를 이겨내는 힘을 행하는 자에게는 뜻이 있다. 안을 다스릴 바를 놓치지 않는 자는 영원하고,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자가 수명을 누리는 것이다.
제 34장 임성(任成)
크나큰 도가 충만하구나. 좌우로 없는 곳 없이 그득하다. 만물은 도를 어머니로 삼아 태어나 도를 떠나지 않으며, 도는 만물을 이루어 낸 공이 있지만 공치사를 하지 않고, 도는 만물을 사랑하고 길러 주면서도 주인노릇을 하지 않는다. 도는 항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도는 작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만물이 도의 품으로 되돌아가지만 도는 주인노릇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도는 큰 일을 다 마치고도 스스로 크다고 자랑하지 않으므로 능히 그 큰 일을 이룩할 수 있다.
제 35장 인덕(仁德)
큰 사랑을 행하는 도를 터득하면, 천하에 걸림없이 두루 왕래할 수 있다. 그러한 왕래는 방해받지 않으므로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큰 사랑의 도가 들려 주는 음악과 먹게 하는 음식은 지나는 길손의 발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도의 드러냄은 담담할 뿐 맛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도의 큰 사랑을 아무리 보려고 해도 다 볼 수 없고, 도의 큰 사랑을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다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도의 큰 사랑을 아무리 활용해도 다하여 소진될 수 없다.
제 36장 미명(微明)
무엇을 접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펴주어라. 무엇을 약하게 해주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강하게 해주어라. 무엇을 폐지해 버리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흥하게 해주어라. 무엇을 빼앗고 싶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을 도의 섭리라고 한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을 튀어나와서 살 수 없고, 나라의 제도는 백성에게 과시할 수 없다.
제 37장 위정(爲政)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않는 것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도를 따라 지켜 주면, 만물은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게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하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게 자연의 덕으로 진정시키리라. 자연의 덕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고요하고, 욕심이 없어 고요하면 천하는 저절로 바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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