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귀 / 이경임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나무는 장신구를 떼어버리듯 사소한 귀들을 떨어뜨렸다
모호한 악기들처럼 나무를 흔들던 잎사귀들이 사라졌다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나무는
늘 귀가 아팠다
허공이 흔들리는 잎사귀들로 꽉 채워져서
나무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세상을 떠돌며 바람이 묻혀온 울음소리들이
나무의 귓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했다
제 몸속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들이 제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까지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시끄러운 귀들이 죽을 때마다 해바라기가 피고 별이 빛났다
나무는 간신히 한 그루의 텅 빈 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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