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작품

나비, 문주란 / 주선화

주선화 2014. 12. 14. 14:58

우리 詩 2014년 11월호 발표

 

나비 / 주선화

 

배꼽 아래로 하늘을 보고 있다

몽실몽실 피어난 구름이

배꼽에 모여 차오르자

티벳의 성지가 더욱 가까이 보인다

펄럭거리던 룽다

성스럽게 읇조리던 새의 문자, 저절로 몸을 세우고

야크를 쓰다듬던 손길은

허공을 타고 오른다

 

새들도 들기 힘든 집이 지어진다

알몸의 그녀가 하늘을 문다

모래는 바람에 실려 강을 건너고

물줄기는 오랫동안 타고 있다

가벼운 기운이 풍만한 기로 가득 채워진 채

점점 더 길게 더 깊게 하늘을 품어간다

 

어제는 잊혀지고

오늘은 좀 더 길게 운다

사방은 어둡다

아무리 돌려도 허물없다고

어둠에 길들여진 마니체 소리

그래서 밤이 더 무겁다

알몸의 그녀가

새삼 가벼워진 밤을 머리에 이고

다랭이 소금밭을 지나

즈런즈런 티벳으로 난다

 

 

문주란

-프란시스코 꼬로나*

 

파도처럼 포말을 이루며

수평선에 목을 건 하얀 꽃이 있다

 

멕시코 이민 일 세대

나라를 사랑했지만

일본 노예상인에게 팔려갔다

마야인 여자와 결혼을 하고

마야인의 말을 배우며 살았다

새 성씨와 이름은 프란시스코 꼬로나

꼬로나는 곧 고로나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본디 성이 고가였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저녁이면 마야인 부인에게 등목을 가르쳤다

어릴 적 바닷가 해변에 하얗게 주저앉아 피던 꽃

천고 파도의 길 따라 찾아온 꽃

그날부터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바다로 흘러 흘러와 떠밀려가며

이곳에 집을 지은 문주란, 고로나

죽으면 문주란 밭에 뿌려 달라는 그이의 유언

까만 씨앗으로나마 바다에 들고 싶었으리라

목을 매던 수평선이 아니라

수평선을 바라보던 언덕배기에서

고향의 바다와 영원히 울고 싶었으리라

 

*이청준의 소설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서 시적 제재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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