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벽화 / 김학중 (제18회 박인환문학상)

주선화 2017. 11. 1. 13:14

벽화        (제18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

 

                                                김학중

 

 

 

   1

   눈먼자가 처음 그 벽에 부딪쳤을 때 벽이 거기 있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벽을 발견하게 된 것은 눈먼자가 자신의 몸을 뜯어 그린 벽화를 보고 나서였다.

 

   2

   벽화는 아름다웠다. 거친 손놀림이 지나간 자리는

   벽의 안과 밖을 꿰매놓은 듯했고 스스로 빛을 내듯 현란했다.  색색의 실타래들이 서로 몸을 섞어 꿈틀대는 그림은 벽에서 뛰쳐나가려는 심장 같았다.  그 아름다움은

   벽의 것인지 벽화의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벽화를 본 사람들은 구토와 현기증을 호소했다.  그들은 벽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환희인지 고통인지 알 수 없는 감각을 느끼며 벽에서 뜯어내기 시작했다.  벽화가 부서지고 있었다.  벽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3

   벽화의 잔해를 손에 쥐고 나서야 사람들은 거기 벽이 있었음을 알았다.  벽화를 그린 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그 자를 눈먼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를 부를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붙인

 

   이름 아닌 이름

   벽을 나누어 가지고도

   벽을 볼 수 없었던 자들은 흩어지며

   그 이름만을 나누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