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미는 붉다
주선화
장미 계단 앞에서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겨우 한 발을 내디디려했을 뿐인데
검은 장미는 담장을 따라
제 그림자를 계속해서 떨어뜨린다
장미는 붉고
나는 어둡다
가시는 제 꽃잎을 찌르는 깜깜한
장미의 터널 속으로
아무도 모르는 황홀한 길을 낸다
그래서 장미는 저리 붉은가
목어가 물을 따라 돌아간다
신흥사 절간 마당 목어 한 마리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푸른 숲속 새들이 날아가다 말고
파란만장 꽃들로 핀다
활활 불꽃을 얻어
절 한 채 차지하고 앉아
세상 구경 두루두루
볼 것 안 볼 것 다 보고
무산스님 저 세상으로 가벼이 날아가나 보다
*무산스님의 열반송
* 2019년 시인정신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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