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주선화
거대한 석회암절벽에 갇혀
낡아 가고 있는 그늘
사람들이 모여 쉬고 있다
크루즈가 내다 버린 사람들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고
선글라스 너머 태양을 따라가기도 하고
한 때의 바다가 한 척의 배를 지운 채
산뜻하게, 부드럽게 편서풍을 맞는다
파도보다 높은 위용을 자랑하던 자존심으로
눈부신 백사장에 정박해 떠날 줄 모르는
바람이 바뀌면 썰물과 함께 고요가 오고
다시 별빛을 가득 싣고 먼 나라로
출항을 알리는 고동을 울리면
버려졌던 곳을 버리고 돌아간 사람들은
그곳에 남겨진 낡은 배의
밤은 더 이상 꿈꾸지 않을 것이다
* 2019년 시와 시학 여름호 해양시 특집 발표
'발표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부 / 주선화 (0) | 2019.09.05 |
---|---|
시는 이렇게 오는가 / 주선화 (0) | 2019.06.21 |
나와 문학관 / 주선화 (1) | 2019.04.20 |
검은 장미는 붉다 외 1편 / 주선화 (0) | 2019.03.29 |
사과 한 입 깨물어 / 주선화 (0) | 2019.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