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속죄 / 신미나

주선화 2021. 4. 19. 11:31

속죄

 

ㅡ 신미나

 

 

사람들은 어렵게 꺼낸 얘기라며 돌을 주고 갔습니다

던지면 누군가를 아프게 만드는 돌

이 돌에 대해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들은 실컷 울고 난 뒤에 평온해진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 돌을 받아줘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이제야 물웅덩이에 뜬 무지개가 보인다고

흙탕물에서 핀 연꽃이 깨끗하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혼자서 돌을 주고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돌을 주머니에 넣고 걸을 때마다 발이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그들을 만나면 얼굴에서 돌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는 점점 무거워지는 돌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돌이 피투성이 얼굴을 하고 운다고

밤마다 이를 가는 소리를 견디기 힘들다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돌이 다 있느냐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의 죄는 너무 오래 돌을 매만진 것입니다

주머니에서 비슷한 돌을 꺼내 보여 주지 않은 까닭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저는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쌓고 쌓은 얼굴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

그중에는 저를 닮은 돌도 있었습니다

 

저를 닮은 돌을 주었습니다

돌을 없애는 방법은 돌을 되돌려 주지 않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돌을 묻은 구덩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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