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같은 내 몸에 황소 같은 병이 오네
ㅡ 이화은
엄마의 그 기막힌 비유를
그땐 무심히 흘려버렸는데
엄마 몸에 찾아왔던 그 황소가 내 몸에도 들었어요
무릎을 밟고 심장을 밟고 저벅저벅
오장육부에 소 울음소리 자욱해요
바늘 같은 내 몸을 어디에 숨겨야 할까요
당신의 바늘이 내 옷깃에 숨어들었을 때 나는
매정하게 털어버렸는데
당신의 아픈 바늘은 딸이라는 이름을 꿰매고 또 꿰맸지요
미어지고 뜯어지고
꿰매면 꿰맬수록 나는 더 누덕누덕해지고
황소 발자국으로 가득한 당신의 몸을 마침내
당신이 떠나던 날을 기억해요
기억이라는 말이,
다만 기억한다는 말이 얼마나 아프고 무심한 말인지
쉿,
황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요
자는 척해야 해요
그런데 엄마 잠은 어느 서랍에 넣어두셨어요
황소 같은 어둠 속에서
바늘 같은 잠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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