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악양 / 김한규

주선화 2021. 8. 19. 09:38

악양

 

ㅡ 김한규

 

 

  주눅은 완행버스 뒷자리로 가지 못했다 빠져 죽은 처녀

의 치마폭처럼 강모래가 쌓이고 넘볼 수 없는 읍내의 밤

거리를

 

  서성이던 목덜미 뒤로 진저리를 치며 기차가 지나갔다

 

  누이는 떠나는 사람이었고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지

않는 편지를 펼쳐 읽어 주면 구들장 아래 눈물을 묻던 어미

 

  주춤거리며 주눅을 배웠다

  아무리 찢어도 남아 있는 낱장이었다

 

  집 아래서 개울이 우는 소리를 삼켜 주었다 뒷산이 개

울을 다 덮었다 밤이면 개울도 뒷산도 모른 척 같이 갔다

 

  남아 있는 날이 한 치도 어김없이 죽어 갔다

 

  배운 주눅을 끼고 파묻힌 기차의 좌석에「

  떨어지는 벚꽃을 주우면

  낱장에 핏물이 배여 있는 악양

 

 

*시집 김한규 「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