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그릇 행성
ㅡ이영옥
물미역을 데쳤다
푸른 물결이 밀려와 고요를 헤집는다
지상의 말들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먼지처럼 깊어진 엄마
허기 아닌 사랑은 없고
오와 열을 맞춘 수저는 냉정하다
쓸 만한 것을 버린다고 잔소리 하던 엄마에게
궁상맞다고 핀잔이나 주던 나쁜 년은
쥐를 보아도 관심 없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제멋대로 구는 모럴은 지겨웠고
당연한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저녁이다
내일 죽어도 내일을 준비하는 손끝
가루를 움켜 쥔 가랑잎이 가래처럼 끓고
윤기 잃은 마른 것마다
눈물의 염분이 허옇게 배여 있었다
우리는 제어할 수 없는 탄력으로
심연에서 튕겨 나왔던 어리둥절한 물질
왜 서로의 난간 아래 매달려 찾아 헤매였을까
뭇별 사이 낯설고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찍힐 때
미역국이 조용하게 끓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 옆에 가장 오래 켜져 있었던 형형한 눈빛을 끄고
나는 엄마를 낳은 산모가 되어
김이 오르는 국물 한 숟갈을 뜨고 싶다
뜨건 국물이 행성처럼 모여든 식탁
시장가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은 줄 알았는데
놓치지 위해 잡았던 많은 것들
누군가가 떠먹여 줬고
누구에게 떠먹여 줄 동안
국은 식어가고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돌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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