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눈길 / 정 양 감상 / 남진우

주선화 2021. 11. 30. 11:35

눈길

 

ㅡ정 양

 

 

흐린 하늘 밑

들 건너 마을이 자꾸 멀어 보인다

눈에 묻힌 길은 아예 잃어버렸다

들판을 무작정 가로지른다

발목이 아무 데나 푹푹 빠진다

 

잃어버린 길 위에 까마귀 떼

까마귀 떼도 길을 잃었나보다

어디로 날아가지도 안호

눈밭에 우두커니들 서 있거나

느릿느릿 서성거린다

 

길이 보여도 길이

잃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길이란 잃어버리려고 있는 거라고

구구구구 두런거리며 눈 덮인 들판을

조금씩 비껴주는 까마귀 떼

 

들끓는 검은 피에 취하여

차라리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눈길을 여는 까마귀들 따라간다

또 눈이 오려는지

먼 마을 연기가 낮게 깔린다

 

 

감상

 

ㅡ남진우

 

 

  광막한 눈길을 헤매는 화자의 심사가 흑백의 선명한 대조에 의해 잘 드러나 있다. 길을 잃어버린 그는 어쩌면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는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길한 까마귀가 (눈길을 여는) 안내자로 변하는 것은 이런 깨달음이 있고 나서이다. 과연 까마귀를 따라간 그의 눈에 낮게 깔리는 (마을연기)가 들어온다.

모든 것을 버린 다음에야 비로소 찾아지는 길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