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커브 / 신현정 감상 / 문태준

주선화 2021. 12. 7. 11:09

커브

 

ㅡ신현정

 

 

자정거를 타고 하는 커브가 나는 좋아

 

전신주 앞에서 커브했다

 

막다른 골목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영광문구 지나 청과상회 지나

 

석유집 꺾어 들어 커브했다

 

미장원 앞에서 커브했다

 

마침 은숙이가 오기에 은숙이 앞에서 커브했다

 

우체국 앞에서 커브했다

 

바람같이 내달리다가 우체국 앞에서 커브했다

 

칸나 앞에서 커브했다

 

칸나가 팔 높이 쳐들고 있기에 나도 팔 쳐들고

 

한 손으로 커브했다

 

 

 

감상

 

ㅡ문태준(시인)

 

 

  이 시를 읽으면서 내게도 커브를 도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부끄럼을 타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정면으로 내달리다가 수줍어서 살짝 휘어져 돌아나가는 마음. 다음에, 다음에 하자는 마음. 그것 참 귀해졌습니다. 저기서 은숙이가 옵니다. 때마침 은숙이가 온 것이 아니라, 골목 모퉁이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던 은숙이입니다. 미루어 놓기만 해서 오늘은 어쭙잖게 짧은 말이라도 한 마다 꼭 붙여보고 싶은 은숙이! 그러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어유, 또 은숙이 코앞에서 커브를 틀고 말았습니다. 은숙이를 비켜나 은숙이 같은 칸나 앞에서나 짐짓 팔을 쳐들고 알은체를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어칠비칠 자전거를 타는 소녀, 소년이 되고 싶습니다. 휘파람을 불면서 투명한 햇살 속을 가르며 '커브'를 하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