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 서광일 감상 / 박성우

주선화 2021. 12. 17. 10:33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ㅡ서광일

 

 

11월 저녁 버스 정류장 앞이었다

겨울이 도착하는 소리를 다급하게 들었다

 

사람들은 버스가 멈추는 지점을 향해 달렸고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졌다

 

부모와 자식은 간단명료하게 이별 연습을 하고

남편과 아내는 무관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다

어머니는 수술한 사실을 감추려고 전화기를 꺼 놓았다

 

아버지는 원래 아픈데다 원체 말이 없다

이 계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돈이다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될 것 같아서

두툼하고 견고한 외투를 입은 자들만 훔쳐보았다

 

사람들은 어깨에 맨 근심을 붙잡고 버스에 올랐다

어떤 추측도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날 조심스레 지워 버린 게 분명했다

 

 

 

감상

 

ㅡ박성우(시인)

 

 

  오싹오싹, 날 추워지고 주머니 가벼워지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우리에게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된다면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들 것만 같은데요,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