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해목
ㅡ안태연
축축한 것에 닿으면 금방 어두워지는
너의 얇은 감정선
걱정스레 쓰다듬어보다가
가지 하나가 뚝 꺾인다 하나가 꺾이면 다음은 더 쉽게 꺾이고 (이건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희미한 목소리에는 겨울이 고여 있다
어쩌면 매운 밤의 공기
내가 너를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르는 구석에서 기억의 잎사귀들을 오래 맞추고 있는 너의 손가락들이
이런 게 삶일까, 묻다가
무심하게 흘려보낸 일들이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어떤 다짐은
한 적도 없는데 네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수천수만의 눈송이들이 머리에 얹혀
아름다움이 되고 그 아름다움이 또 따뜻함을 낳는다는 이야기는
향기 나는 고전이지만
갑자기 뛰어든 날씨를 너그럽게 품아줄 수는 있어도 아무도 너를 대신하여 울어줄 수 없는 것
감추어야 하는데
눈 위의 발자국처럼 덮어줄 수 없는 것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가벼운 것들도 죄다 받아내지 못하며 무겁게 쓰러지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서
부러진 가지들을 모으고 보면
겨울나무 아홉 그루 근처에서 멀어져 있는 겨울나무 한 그루
누구나 슬픔을 당겨써서 내일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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