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설해목(雪害木) / 안태연

주선화 2022. 2. 2. 16:05

설해목

 

ㅡ안태연

 

 

축축한 것에 닿으면 금방 어두워지는

너의 얇은 감정선

 

걱정스레 쓰다듬어보다가

가지 하나가 뚝 꺾인다 하나가 꺾이면 다음은 더 쉽게 꺾이고 (이건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희미한 목소리에는 겨울이 고여 있다

 

어쩌면 매운 밤의 공기

내가 너를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르는 구석에서 기억의 잎사귀들을 오래 맞추고 있는 너의 손가락들이

이런 게 삶일까, 묻다가

 

무심하게 흘려보낸 일들이 마음 속에서 다시 일어나고

어떤 다짐은

한 적도 없는데 네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수천수만의 눈송이들이 머리에 얹혀

아름다움이 되고 그 아름다움이 또 따뜻함을 낳는다는 이야기는

향기 나는 고전이지만

 

갑자기 뛰어든 날씨를 너그럽게 품아줄 수는 있어도 아무도 너를 대신하여 울어줄 수 없는 것

감추어야 하는데

눈 위의 발자국처럼 덮어줄 수 없는 것

 

괜찮아, 다 잘될 거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데 가벼운 것들도 죄다 받아내지 못하며 무겁게 쓰러지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서

부러진 가지들을 모으고 보면

겨울나무 아홉 그루 근처에서 멀어져 있는 겨울나무 한 그루

 

누구나 슬픔을 당겨써서 내일이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