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제 21회 수주 문학상 당선작

주선화 2022. 5. 6. 15:29

동물원

 

ㅡ김재원

 

 

동물원이었어요

걷고있었어요

자꾸만 안으로 들어갔어요

줄서서 입장했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아이스크림통에 아이스크림이 없었어요

풍선은 쭈그러들어 있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아무도 없었지만 용기내서 말했어요

이건 아니야

길이 깊어지고 끝도 없어지고

아무도 없는 동물원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를 재미없어

사람들은 있어야 하고

나무들은 파래야 하고 새들은 지저귀는 거야

자꾸만 이런 곳으로 이끄는 너는 누구니

내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듯 동물원을 텅텅 울렸어요

비는 그치지 않았고

기린이 있던 자리에 기린이 없었어요

설마 폐허를 보고싶은 거니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어요

그때 호주머니가 벌어지듯

풍경 안에서 손이 나왔어요

다섯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손이

나를 향해 내밀어져 있는데

그걸 잡아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몰랐어요

그건 아이의 손이었어요

그걸 잡고 끌면 그 애가 죽을 거 같았어요

그걸 잡고 들어가면 다시 못 올 거 같았어요

어쩌면 좋을지 몰라 비를 맞고 서 있었어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빗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나봐요

길 한가운데 서서 내가 울고 있더라고

나중에 엄마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엄마를 따라가면서 돌아보니

그 애 손은 없고 갈라진 검은 공간에

흰 얼굴이 보였어요

세상에 와서 맨 처음 본 얼굴처럼

그 애는 나를 보고 서 있었어요

가지 않고 거기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