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아주 작은 점의 세상 / 천수호

주선화 2022. 9. 19. 10:35

아주 작은 점의 세상

 

-천수호

 

 

지금 나는 아주 작은 점을 지나고 있다

 

작은 섬을 지나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그 점은 빗물에 불어서 번지고 있다

 

뺨을 다 가리고도 남는 손수건을 꺼내

왼쪽 뺨이 비친 차창을 긁어보는데

동전이 긁고 지나간 즉석 복권처럼

상금도 상품도 다 놓친 쭉정이 은박지 가루처럼

쓸모도 없이 차창에 동전 두께만한 금이 긁혔다

 

그 작은 금이 나를 지나가고 있다

 

점이 시야를 뒤덮고 있기에

하마터면 그것이 차창에 찍힌 얼룩이라는 것을 잊을 뻔해서

내가 점이라는 것도 깜빡할 뻔해서

컴컴한 점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아가, 어머니, 부르며

가까운 이들이 여기에 있었구나 생각하고

 

그 깊은 굴속으로

먼 산줄기가 사각거리며 먹혀들어 가고

빌딩 하나가 통째로 쓸려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 대단한 얼룩이야

이렇게 말하고 말았지만

이런 찬사는 사실 점의 세계를 허공에 있게 한

저 유리를 잊게 하는 말이었다

 

폰에도 작은 유리창의 창이 있어

새 창을 열면 읽다가 만 기사가 다시 뜬다

 

죽은 척한 우크라이나 소녀가 발떡 일어나

인터뷰하는 장면

부모가 총살당한 현장에서

피 얼룩이 숨겨준 목숨

점처럼 숨겨졌다가 커지는 이야기들

 

점이 벗는 허물은

차창을 파닥거리는 성충으로 만들어

느티나무를 벗고 집채를 벗고 먼 산까지 벗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