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어제의 카레 / 한연희

주선화 2022. 12. 7. 11:20

어제의 카레

 

-한연희

 

 

용감해지고 싶다

감자를 휘저으면 떠오르는 거품처럼 무모해져 버릴까

버섯을 씹다가 불안해지는 걸 용케 견뎌낸 아침에

 

카레는 어째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맛있는지

퍼먹다 보면 꼭 급체할 것 같았지

이 섣부름을 건져낼 순 없는지

카레를 좋아하는 네게 묻는다

 

용기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어제의 카레는 일종의 치유 음식

향신료에는 신이 내린 효능이 깃들어 있다지

하루 숙성을 견디며 발효되는 것에는

용기뿐만 아니라 참을성 아니면 배려 혹은 인류에

 

넓적한 그릇에 카레를 옮겨 담는다

오로지 이 한 그릇만 있으면

우리는 사랑하고 싶고 퍽 용감해질지 모른다

 

무지개를 건너간 반려동물 나의 친구 언제나 자매

카레의 여왕 다정한 이웃 혹은 선생님 저 먼 인도의

수많은 신의 부름을 물려받은 자 그리고 내가 식탁에

마주 보며 앉아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든지 네 편이 되어주기로 약속할게

 

욕조에 누워 죽을 뻔했던 기억은 잊고

락스 냄새를 너무 오래 맡아 구토를 했던 기억도

온몸에 솟아나는 소름을 내버려 둔 기억도

 

널 만나기 전에 폭력에 길들었던 세상은 잊고서

 

향긋한 카레를 한 입 두 입 안에 담는다

 

이것은 건강한 몸을 위한 카레

어려운 시간을 견뎌낸 축복의 음식

 

어제를 꼭꼭 씹어 심킨다

 

시큼함 맛이 입안을 자극하지

밝고 긍정적인 토마토와 바질 그리고 호랑이콩의 기운까지

맛을 보여줄게요

 

이제 나눠줄 의지와 애정을 도시락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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