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나란히 / 육호수 감상 / 나민애(문학평론가)

주선화 2023. 4. 25. 10:21

나란히

 

-육호수

 

 

소반 위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켤레

나란히 올려두고

기도의 말을 고를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기도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쪽 달이 창을 넘어

입술 나란히 귓바퀴를 대어올 때

 

영원과 하루가 나란하다

 

요람에 누워 잠드는 밤과

무덤에 누워 깨어나는 아침

 

포개어둔다

 

 

 

감상 / 나민애(문학평론가)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와 안식을 돕고,

안식의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

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

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