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육호수
소반 위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켤레
나란히 올려두고
기도의 말을 고를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기도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쪽 달이 창을 넘어
입술 나란히 귓바퀴를 대어올 때
영원과 하루가 나란하다
요람에 누워 잠드는 밤과
무덤에 누워 깨어나는 아침
포개어둔다
감상 / 나민애(문학평론가)
시는 마음의 조각이다. 낯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때에,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날려보낸 한 조각이 바로 시다.
그러니 익숙할 리가 없다. 타인의 마음 한 조각은 내 것이 아니니까 익숙하지 않아야 맞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좋아하게 된다.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마음인데, 그건 절대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읽는 순간 그 조각에 내 마음이 박힌다.
'어? 여기 내 마음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순간 이 외로운 지구는 외롭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하나의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외롭지 않게 된다.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게 놓여 있는하루의 끝, 지쳤으나 겸허하게 마주 잡은 손, 허기와 안식을 돕고,
안식의 허기를 돌보는 다행스러움이 이 소박한 시를 꽉 채우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보통의, 그러나 가장 감사한 우리
의 모습 아닐까. 특히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는 말이 오래 남는다. 아픈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고, 상처받은 사
람은 타인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대단치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지만, 나란히 나란히 나아갈 수 있다. 나란히
나란히 옆 사람 손을 잡아줄 수 있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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