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살롱 드 멕시코
-진이정
엘 살롱 드 멕시코
라디오의 선율을 따라 유년의 기지촌, 그 철조망을 넘는다
그리운 캠프 페이지, 이태원처럼 보광동처럼 후암동처럼 그리운 그리운
그립다라는 움직씨를 지장경에서 발견하곤 난 울었다
먼지 쌓인 경전에도 그리움이 살아 꿈틀댔던 것이다
전생의 지장보살도 어머니가 그리웠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리워 보살이 되었던 것일까
그리워한 만큼만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비유일까
엘 살롱 드 멕시코가 그립다
난 왜 그리움 따위에만 허기를 느끼는 것일까
이태원을 무작정 베회하고 싶다
그나마 내 고향집 근처를 닮은 곳이기에
아마 난 뉴욕에서도 기지촌의 네온사인을 그릴 것이리라
후암동의 불빛이 보고파 눈물지었다는 맨해튼의 어느 교포 소녀처럼
기껏 그리움 하나 때문에 윤회하고 있단 말인가
내생에도 난 또 국민학교에 입학해야 하리라
가슴에 매단 망각의 손수건으론 연신 업보의 콧물 닦으며
체력장과 사춘기 그리고 지루한 사랑의 열병을
인생이라는 중고시장에서 마치 새것처럼 앓아야만 하리라
악, 난데없이 내 맘 속에서 인류애가 솟구친다
이 순간 내 욕정은, 그리움으로 잘 위장된 내 욕정은 온데간데 없다
이게 제정신인가
아님 무슨 인류애라는 신종 귀신이 날 덧씌운 것인가
그날 살롱 멕시코, 어둠고 초라한 이국의 병사들 틈에서
딸라 한닢 없던 외삼촌만이 명랑하게 딸랑거렸다
샌드위치와 위스키를 시키고 나서
용케 합석시킨 지아이의 붉은 뺨에 뽀뽀하던 외삼촌,
그립다, 어수룩한 그 백인 병사마저
엘 살롱 드 멕시코
이젠 자꾸만 들어가고 싶은
그래 캠프 페이지 위병초소의 산타클로스와 함께
딱딱한 미제 사탕을 입에 물고 예배당을 두리번거리던 나, 나
성조기는 사라져도 그 단맛만은 영원하리라
나의 엘 살롱 드 멕시코를 적시는
외삼촌의 스트레이트 위스키처럼, 여태 숙취로 남은 그 취기처럼,
그 엣날의 그리움에 어느새 난 샌드위치 되어 있다
내 해탈한 뒤라도 그 그리움만은 영겹토록 윤회하리라
엘 살롱 드 멕시코
*시인 진이정은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 우남정 (0) | 2024.06.24 |
---|---|
침착하게 사랑하기 / 차도하 (0) | 2024.06.23 |
각인 / 안희연 (0) | 2024.06.19 |
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0) | 2024.06.18 |
몰염치 / 김휼 (0) | 202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