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보러 간 사람
- 김은지
어제 우리는 만났어요
창문을 통해서
어제 만난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고
어제
되게 다감하고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성함은 몰라요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박수도 치고
댓글에 부지런히 뭔가를 남겼는데요
붉은색 대교 너머로
해가 지고 있는
나의 창
아니 해가 지는 게 아니라 뜨고 있는 건가
섬과 섬을 연결하는 붉은색 대교 앞에
나의 얼굴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줌 회의를 할 때
처음으로 보게 된 나의 표정
눈을 엄청 크게 뜨네
창문은 고를 수 있어요
이슬 맺힌 풀빛 창문
우주 정거장에서 바라보는 일출 창문
회의를 마치며
나는 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투명한 파도가 쏟아지는 하얀 모래를 밟거나
푸른 오로라가 쏟아지니까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반바지를 입었지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면
우리는 어제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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