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백반 / 김소연

주선화 2024. 11. 20. 08:35

백반

 

- 김소연

 

 

그 애는

우리, 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놓았다

죽지 못해 사는 그 애의 하루하루가

죽음을 능가하고 있었다

 

풍경이 되어가는 폭력들 속에서

그 애는 운 좋게 살아남았고

어떻게 미워할 것인가에 골몰해 있었다

그 애는 미워할 힘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번번이

질 나쁜 이방인이 되어 함께 밥을 먹었다

그 애는 계란말이를 입안에 가득 넣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추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어떤 울먹임이 이젠 전생을 능가해버려요

당신 거침이 당신 몸을 능가하는 것처럼요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그 애는

두 발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했다

잘못 살아온 날들과 더 잘못 살게 될 날들 사이에서

잠시 죽어 있을 때마다

 

그 애의 손가락에 생선 살을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 라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는

마지막 사람이 되렴

 

내가 조금씩 그 애를 이해할수록

그 애는 조금씩 만가진다고 했다

기도가 상해버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