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눈사람의 시간 / 한정원

주선화 2024. 11. 26. 10:32

눈사람의 시간

 

- 한정원

 

 

  떨고 있는 눈사람에게 녹지 마, 라고 말하는 대신

울지 마, 하고 증발하는 어깨를 털어주었지.

 

  너는 눈이 있으니까, 물을 품고 있으니까, 뺨이

있으니까, 스며들 입이 있으니까, 울고 나면

하늘이 씻은 듯 없어질 것 같아 다시 녹지 말라고

얼음 밴드를 붙여주었지.

 

  언제나 흘러내리는 무릎, 탈주할 기둥 뒤에서

시간을 재고 있는 모래시계 속 눈가루 날리는.

 

  소멸한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흐르는 아스팔트, 도착할 호수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우주의 작은 숲 속으로 길을 내고

있다는 습관을.

 

  세상에 나쁜 날씨는 많았지, 이탈한 햇빛과

바람이 성을 쌓는 동안 눈의 살점을 떼어내 오리를

만들고 기러기를 새기고 아기를 낳고 미래는

눈보라 속에서 희미하게 쌓여갔지. 나는 눈사람

애인, 눈송이 시계를 따라가며 뜨거운 피가 흐르는

노래를 불렀지. 소리쳐도 무음으로 서있는 타인의

노래를 들으려고.

 

  녹지 마, 울지 마, 온 몸으로 사라지는 그림자.

 

  물의 뼈만 남기고 사라졌다가 다시 척추를

세우는 겨울의 집. 사람 속에 있는 눈을 보았지.

사람 눈을 들여다보는 눈부처를 찍었지. 눈빛

속에서 흘러내리는 눈의 몸을 보았지.

 

  녹지 마, 라고 말하는 대신 울지 마, 하고

위로했지. 모든 액체는 슬픔인 것처럼.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 메뉴 (외 1편) / 도복희  (1) 2024.12.09
한파주의보 / 박기원  (0) 2024.11.29
눈치 없이 핀 꽃 / 정선희  (1) 2024.11.22
백반 / 김소연  (0) 2024.11.20
나란히 나란히(외 1편) / 안화수  (0) 202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