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리스본
- 김영찬
하지만 오늘밤엔 리스본까지만
바르셀로나, 쌩 폴 드방스쯤이야 나중에 품어도 전혀
늦지 않지
북방의 주택가엔 주인 없는 개들만 어슬렁어슬렁
빠리의 쌩 제르맹 뒷골목에 나뒹구는 빈 포도주병들만
습관적인 휘파람 소리를 내더라도
오늘은 오직 리스본까지만,
몰도바
몰디브
몰라도 그만 안 가도 그만
그렇더라도 결국
품 안에 끌어들여 일일이 쓰다듬게 될 무 국적의 섬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야 없지
초저녁부터 야심한 밤까지 리스본의 불꺼진 테라스에 기대어
고즈넉한 밤안개에 뜬금없는
칵테일 여행
진한 압생트 쑥 향에 코를 처박고
뜨거운 섬이 하나하나 가슴 복판에 솟구칠 때까지
집에 갈 생각
배낭 메고 딴 길로 샐 생각일랑아예
접어둘 것
그렇고말고 오늘처럼 과달키비르강(江)이 소리 없이
강물 수위를 높이며 시종일관
침묵을 고집할 때
리스본의 매력은 무섭도록
관능적일 수 밖에
달콤한 밤공기가 맨발의 우리들을 달빛젖도록 사주할 테니
그래, 우리 몰도바를 향해 출발하는
배를 기다리는 척
남은 생애를 몽땅 대책 없는 리스본의 창가에서 어기적거리다가
옹골차게 우량한 쌍둥이들이나 뭉텅뭉텅 낳게 된들 누가 어쩌랴
리스본까지만, 제발 더 멀리 떠나서 탈이 될
헌책방의 책들일랑
뚜껑 닫아버리고
오늘 밤엔 리스본까지만, 리스본의 품 안에 안겨서
오늘밤은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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