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
- 박기원
갈 곳 정해진 하루는
오라는 곳 없는 오늘과 기억이 같을까
국밥집에서 허겁지겁 베어 먹은 뜨거운 김이
줄이 엉킨 정류장에서 입김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수은주가 웅크릴수록 남해로 가는 버스는
건조한 허공끼리 부딪치는 어깨처럼 투덜댔다
코를 풀지 않는 맹맹한 공기와
흐리멍덩한 풍경이 마주치는 동안
누가 없앤 마음인지 모르는 가슴이
김 서린 차창에 하트를 찍던 손과의 악수를 꺼렸다
살얼음 같던 사람의 체감온도를 기록해 둔 수첩을 꺼내
하루치 감정의 절댓값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마음의 기울기를
체온계 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재어본다
늘 그랬듯 새롭지 않은 방식으로 돌아올 것이었지만
늘 그랬듯 이번에도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적어두었다
내가 나라면,
돌아오지 않을 듯 돌아오는 내가 더 미울까
돌아올 듯 돌아오지 않는 내가 더 미울까
아니면, 나에게 묻지 않는 네 질문이 더 차가울까
부동항을 찾아가고 있다
푸른 이끼 찾아 툰트라를 맨발로 뒤적이는 순록처럼
바다가 많은 바다에 가서
제 가슴 깊이보다 깊이 얼어본 적 없는 바다가
가슴 언 사람보다 더 가슴 치며
격랑의 몸부림을 치는 연유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다
수평선이 움츠릴수록
남녁으로 가는 배가 몹시 흔들리고 있다
*박기원 시집 <바람풍선의 수화>
ㅡ 현대시 기획선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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