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메뉴 (외 1편)
- 도복희
쇼팽 환상곡으로 부탁해요
선율에 기대어 탈출을 시도해 보려고요
노르웨이 자작나무 숲의 통나무집
새벽이 무지갯빛으로 물드는 곳에서
누구도 마주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움푹 파인 초승달에 걸터앉아
낮달이 될 때까지
밤의 벼랑을
뜬눈으로 보아야 할 테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이라는 감옥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발자국 사라진 사막을 걷는 일이 대수겠어요
한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이
숨통을 조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기대는 죄가 되죠
모든 당신은 환영이었습니다
맨발로 도밍자 되어 자작나무 숲길을 달려가요
쇼팽 곡으로 부탁해요
부드러운 은둔
새들이 날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저녁은
늘 그대의 집 쪽이었다, 습관 같은 것
두꺼운 책을 찢어 내며 햇빛을 차단한 시간 동안
활자들이 말을 걸었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알아듣지 않는 오후에도
무언극은 진행되었다
관객으로 그대만을 않혀 놓은 소극장
엔딩이 몇 년째 미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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