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이별 메뉴 (외 1편) / 도복희

주선화 2024. 12. 9. 10:07

이별 메뉴 (외 1편)

 

- 도복희

 

 

쇼팽 환상곡으로 부탁해요

선율에 기대어 탈출을 시도해 보려고요

노르웨이 자작나무 숲의 통나무집

새벽이 무지갯빛으로 물드는 곳에서

누구도 마주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움푹 파인 초승달에 걸터앉아

낮달이 될 때까지

밤의 벼랑을

뜬눈으로 보아야 할 테지만

상관없어요

당신이라는 감옥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발자국 사라진 사막을 걷는 일이 대수겠어요

한때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이

숨통을 조이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기대는 죄가 되죠

모든 당신은 환영이었습니다

맨발로 도밍자 되어 자작나무 숲길을 달려가요

쇼팽 곡으로 부탁해요

 

 

 

부드러운 은둔

 

 

새들이 날아갈 방향을 바라보는 저녁은

늘 그대의 집 쪽이었다, 습관 같은 것

 

두꺼운 책을 찢어 내며 햇빛을 차단한 시간 동안

활자들이 말을 걸었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알아듣지 않는 오후에도

무언극은 진행되었다

 

관객으로 그대만을 않혀 놓은 소극장

엔딩이 몇 년째 미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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