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눈 /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박용래 ( 1925 ㅡ 1980 )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잖은 것들을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그은 이 시에서 "붐비다" 라고 써서 목탄화처럼 평면적인 풍경에 동선을
끌어넣는가 하면 한 곳 한 곳 짚어가던 시선을 들어 올려 쾡한 빈터로
옮김으로써 시의 공간을 일순에 넓게 확장하는 재주를 보인다
" 감새 / 감꽃속에 살아라"라고 노래했던 선한 그가 " 윤회 끝 / 이제는 돌아와"
다시 살고 있을까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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