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 주의 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만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1983년)
*
눈은 어떻게 내리는가, 어디서 오는가, 어디로 사라지는가 ,
머언 곳에서 여인의 옷벗는 소리로 내리는 김광균의 눈이 잇는가 하면,
쌀랑쌀랑 푹푹 날리는 백석의 눈이 있다.
기침을 하자며 촉구하는 김수영의 살아있는 눈도 있고
괜, 찮, 타, 괜, 찮, 타, 내리는 서정주의 눈도 있고,
갑작스런 눈물처럼 내리는 기형도의 진눈깨비도 있다
그리고 여기 " 백색계엄령" 처럼 내리는 최승호 (54)시인의 눈이 있다
그의 시는 선명하고 섬뜩하게 " 그려진다 " " 觀관 " 과 " 察찰 " 을 시 정신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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