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사슴 / 노천명

주선화 2008. 1. 14. 16:31

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1938년)

 

 

* 노천명시인은 어릴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이 "천명" 으로 바뀌었다

하늘로 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를 누리라는 뜻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이 시는 한 마리의 사슴을 등장시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인은 사슴의 몸통과 다리를 배제한 채,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사슴의 목 윗부분을 그려낸다

남빛 치마와 흼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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