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1938년)
* 노천명시인은 어릴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이 "천명" 으로 바뀌었다
하늘로 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를 누리라는 뜻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이 시는 한 마리의 사슴을 등장시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인은 사슴의 몸통과 다리를 배제한 채,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사슴의 목 윗부분을 그려낸다
남빛 치마와 흼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시인이었다
'현대시 추천 1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 눈 / 박용래 (0) | 2008.01.17 |
---|---|
대설 주의보 / 최승호 (0) | 2008.01.15 |
한 잎의 여자 / 오규원 (0) | 2008.01.13 |
墨畵묵화 / 김종삼 (0) | 2008.01.10 |
사평역에서 / 곽재구 (0) | 2008.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