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주선화 2008. 2. 27. 10:40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었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는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겄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벼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서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1992년>

 

 

* 흔하게도 인생은 여행에 비유된다

우리는 흘러가면서 만난다. 사람과 붐비는 시장과 웃음과 꽃밭의 폭풍의

바다와 벼랑과 사막을 만난다

그러므로 삶에는 여독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내 여행의 종착지를 생각한다

이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적적한 곳으로 데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가서 살자고 한다.

종일을 살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개옻 그늘과 늦가을이 살고 잇는 곳

세상의 쓸쓸함을 다 살아본 듯 벌써 무욕을 알고, 골짜기 보다 더 깊은 눈으로

俗離속리한 우리를 맞아줄 여인이 살고 있는 곳, 그러나 그런곳이 있을까

 

김명인 시인은 동두천 연작 발표후에도 지금까지 '욕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막막한 표랑을 강한 연민으로 감싸 안아온 시인이다

그는 한국의 서정시가 실험과 해체와 생각의 과잉과 포즈의 유행을 탈 때에도

흔들림 없이 서정시를 지켜내온 수문신장의 역활을 맡아왔다

이승훈시인은 그를 "한마디로 김명인시는 마음이 놓인다 " 평했다 (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