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적벽가 /장만호

주선화 2008. 8. 1. 11:23

적벽가/장만호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불 같은 상처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가령 한 말의 술을 마시고 한 나절의 비를 맞고도 자벌레처럼
움츠리던 적이 있었는데 비 맞은 매미처럼 떨었는데 그런 날이
면 나 적벽에 가고 싶었네 나 그저 생전에 하나의 태몽 어느 여
름날 어머니의 꿈 속을 유영하던 어린 물고기였을 뿐인데 그
윤회의 강에서도 나는 이 사랑을 꿈꾸었던가, 꿈꾸지 않았던가

큰 물 지면 큰 물이 흐르고, 물은 더욱 단단한 뼈와 흰 힘줄을
갖고, 그 힘으로 나를 덮치고, 사랑은 물처럼 흐르고,젖은 깃털
처럼 나를 가라앉히고, 나무들은 강둑으로 얼굴을 내밀고, 네
설움 가소롭다, 어디서 어머니의 목소리 들리고,적벽은 보이지
않고, 나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고 ···

사랑을 하고서도 우화하지 못했네 그대의 龍門 아래 상처는
비늘처럼 빛나고 나 화석처럼 단단해져만 가네 어느 새로운 날
들은 오지 않고 그곳에 가서 차라리 풍화되고 싶었지만 나는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았네 물 건너지 않았으므로 나 적벽에
가지 못했네 가지 못한 적벽에 그대가 풍화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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