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 류인서
재 하나 넘을 적마다 꼬리 하나씩 새로 돋던 때
나는 꼬리를 팔아 낮과 밤을 사고 싶었다
꼬리에 해와 달을 매달아 지치도록 끌고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꽃을 샀다
새를 샀다
수수께끼 같은 스무 고개 중턱에 닿아
더 이상 내게 팔아먹을 꼬리가 남아 있지 않았을 때
나는 듣지 않는 마지막 꼬리를 흥정해
치마와 신발을 샀다
피 묻은 꼬리 끝을 치마 아래 감췄다
시장통 난장판에 핀 내 아홉 꼬리 어지러운 춤사위나 보라지
꼬리 끝에서 어느새 잡히지 않는 나의 도둑
당신에게 잘라준 내 예쁜 꼬리 하나는
그녀 가방의 열쇠고리 장식으로 매달려 있다
(시집 '여우'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