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썩다 / 정진규
올해는 모과가 빨리 썩었다
채 한 달도 못 갔다
가장 모과다운 걸, 가장 못생긴 걸 고르고 골라
올해도 제기 접시에 올렸는데 천신하였는데
그 꼴이 되었다
확인한 바로는
농약을 하나도 뿌리지 않은
모과였기 때문이라는 판명이 났다
썩는 것이 저리 즐거울까
모과는 신이 나 있는 눈치였다
속도가 빨랐다
나도 그렇게 판명될 수 있을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을까 글렀다
일생(一生) 내가 먹은 약만 해도
세 가마니는 될 것이다
순수한 것이라야 빨리 썩는다
나는 아예 글렀다
다만 너와 나의 사랑이 그토록
일찍 끝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였을까
첫사랑은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연고다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절정에서는 금방인 저쪽이 화안하다
비알 내리막은 속도가 빠르다
너와의 사랑이 한창이었던 그때
늘 네게서는 온몸으로 삭힌 술내가 났다
싱싱한 저승내가 났다
저승내는 시고 달다 그런 연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