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노래하는 모과 / 유희선

주선화 2017. 2. 8. 10:14

노래하는 모과 / 유희선


한 대씩 툭 툭 쥐어 박힌 멍 자국처럼

새파랗게 질린 모과


오늘 아침 식탁 위에 무릎을 꿇고 있다.

여기가 어딘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거린다.


잔뜩 주눅 든 얼굴

뒤둥그러진 마음

누군가 시 창작교실을 두드린다.


사과도 아닌 것이

유자도 아닌 것이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생으로 베어 먹을 수 없는 모과의 계절


말없이 꾹꾹 눌러 두었던

차고 단단한 숨결

설익은 향기를 일으켜 세운다.


고해소로 들어가는 여인처럼

부둥켜 포옹하는 클립트의 연인처럼

황금빛으로 타오를 때까지

익어가는 모과


모과는 썩으면서

절창이다.


퉁퉁 부르튼 입술

흙빛으로 뭉개진는 시간들


느꺼움에

캄캄하게 기우는 목소리

누군가 더 깊은 가을 속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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