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북어 / 이명기

주선화 2019. 5. 20. 09:44

북어

                     이명기



아무 생각 없이 바싹 마른 대가리를 몇 대 두들겨 팼더니

눈이 있던 자리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아― 앙다물지 못하는 텅 빈 입들,


북어는 북어다, 북어北魚다


거죽이 가죽같이 말라버린 폐어肺魚다, 폐허廢墟다


북쪽이다, 북北이다,북僰이다, 끓는 국이다


그렇게 또 누군가를 떠나보낸 어느 봄날,

목련은 피는데 목련은 피는데, 입도 없는 것들이 끓었다






뒤란 대숲에 비가 온다

날카로운 끝을 세워

비를 듣는 시간

마디마다

골수에 우수가 고인다


바람이 인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소리를 쫓아

푸른 등뼈가 휜다


기억할 것이다

전생도 내생도 풍장일 터

언젠가 한 번은

텅 빈 몸으로

이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어느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오후



공중을 밟고 가는 바람의 저 둥근 발자국들,

그늘처럼 몸 밖의 날들이 있었다


한 그루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어는 후생같은 오후,


언제나 어두운 우물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보이곤 했다

내 안의 일렁이는 날들이 있었다


끝내 마저 가지 못한 길들이 상처가 되었으나

옹이처럼 치유의 수액이 흐르는 눈동자는 깊었다


그 깊은 눈으로 두런거리던 나무의 아득한 살림살이,


이따금 비가 들이치는 그 먼 하늘가에서

낯익은 잎사귀들이 들려주던 순례의 빗소리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동안 그렇게

일생이, 푸른 발자국처럼 젖는 그런 계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