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이명기
아무 생각 없이 바싹 마른 대가리를 몇 대 두들겨 팼더니
눈이 있던 자리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아― 앙다물지 못하는 텅 빈 입들,
북어는 북어다, 북어北魚다
거죽이 가죽같이 말라버린 폐어肺魚다, 폐허廢墟다
북쪽이다, 북北이다,북僰이다, 끓는 국이다
그렇게 또 누군가를 떠나보낸 어느 봄날,
목련은 피는데 목련은 피는데, 입도 없는 것들이 끓었다
죽
뒤란 대숲에 비가 온다
날카로운 끝을 세워
비를 듣는 시간
마디마다
골수에 우수가 고인다
바람이 인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소리를 쫓아
푸른 등뼈가 휜다
기억할 것이다
전생도 내생도 풍장일 터
언젠가 한 번은
텅 빈 몸으로
이 바람을 기억할 것이다
어느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오후
공중을 밟고 가는 바람의 저 둥근 발자국들,
그늘처럼 몸 밖의 날들이 있었다
한 그루 후박나무를 바라보는 어는 후생같은 오후,
언제나 어두운 우물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내가 보이곤 했다
내 안의 일렁이는 날들이 있었다
끝내 마저 가지 못한 길들이 상처가 되었으나
옹이처럼 치유의 수액이 흐르는 눈동자는 깊었다
그 깊은 눈으로 두런거리던 나무의 아득한 살림살이,
이따금 비가 들이치는 그 먼 하늘가에서
낯익은 잎사귀들이 들려주던 순례의 빗소리
낯선 길 위에 서 있는 동안 그렇게
일생이, 푸른 발자국처럼 젖는 그런 계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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